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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성사의 관점에서 본 『胎敎新記章句大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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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aning of Taegyosingi in intellectual history of Later Joseon period

조선 후기 지성사의 관점에서 본 『태교신기장구대전』의 의미

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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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meaning of Taegyosingi in intellectual history of Later Joseon period. This article analyzed the meaning of Taegyosingi in two ways. First, I analyzed how the self-consciousness of a female scholar was reflected in the writings. Second, I examined how the writings of a female scholar were reorganized by male intellectuals. Yi Sajudang was dissatisfied with the status of women who were restricted in academic activities. And she wanted to live as an equal to male scholars. So, she thought women should also study on Chinese characters and neo-confucianism. But Yi Sajudang eventually burned down all her works against female virtue by self-censorship. The only book left after her self-censorship was Taegyosingi, because it wasn't against female virtue. However, Yi Sajudang didn't follow the old theory of prenatal education in the female's textbooks. Instead, she made a new theory of prenatal education by combining medical science and neo-confucianism, and then wrote Taegyosingi. Taegyosingi is meaningful in that it has expanded the field of women's academic research. That is also meangingful in that a female scholar inherited academic traditions of So-ron scholars. On the other hand, Taegyosingi was reorganized by her son, Yu Hui. Yu Hui regarded his mother as a teacher, and recognized the mother's writing as the teacher' s writing. Therefore, he reorganized Taegyosingi, the only writings of his mother. Yu Hui completely reorganized Taegyosingi according to the style of Four Books. He empowered Taegyosingi through this reorganizing. Nonetheless, it doesn't mean that intellectual boundaries between male and female scholars have collapsed. But it means that the academic performance of female scholars has begun to be viewed positively.

한국어

본고는 두 가지 층위에서 『胎敎新記章句大全』의 지성사적 의미를 재평가하고자 했다. 첫째, 이사주당, 즉 여성 지식인의 자의식이 저술에 어떻게 투영되었으며, 이는 지성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색하고자 했다. 둘째, 여성 지식인의 저술이 남성 지식인에 의해 어떻게 재편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이사주당은 학문 활동을 제약받는 여성의 지위에 불만을 품고 학문에 매진하여 남성 사대부와 마찬가지로 한 명의 지식인으로서 살고자 하였다. 이처럼 이사주당은 여성도 학문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했으나, 결국에는 유가적 통념을 기준으로 자기 검열을 행하였다. 그러한 자기 검열 후에 유일하게 남긴 저술이 바로 『태교신기』이다. 『태교신기』는 주제면에서 유가적 婦德과 전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주당은 여성의 지식 영역에 해당하는 ‘태교’를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문자인 언문이 아니라 한문으로 논술했다. 그리고 실제 내용에 있어서도 유가적 부덕을 강조하기 보다는 의학과 성리학을 접목하여 創見을 세웠다. 더불어 이사주당은 태교론을 이론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경험한 내용임을 강조했다. 요컨대, 『태교신기』는 의학과 성리학을 접목한 이론적 토대 위에 경험이 가미되어 완성되었다. 이처럼 당대 小技로 치부되던 의학마저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태교신기』는 여성 지식인의 학문 범주를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태교신기』는 박학과 실증을 중시하던 소론계 학풍을 여성의 입장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도 지성사적 의의를 갖는다. 한편 이사주당의 저술은 아들에 의해 재편됨으로써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였다. 아들 유희는 어머니를 스승으로 여겨, 어머니의 저술을 스승의 저술로 인식했다. 때문에 어머니의 저술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여타 여훈서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經典의 형식을 철저히 고수했다. 그리하여 당대 지성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이 저술한 ‘婦德’ 관련 저술이, 당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경전의 형태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남성 지식인이 여성 지식인의 저술을 경전화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시도이지만, 이것이 곧 성별간의 지적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희가 경전의 형태로 재편함으로써 『태교신기』에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은, 여전히 당대 지적 우위가 ‘남성 사대부의 성리학’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여성의 저술에 남성이 주석 작업을 하고, 남성·여성 모두가 序·跋文을 남겼다는 사실은 분명 여성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이전 시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목차

[ 국문초록 ]
1. 서론
2. 李師朱堂의 『胎敎新記』 저술의 의미
3. 柳僖의 節章句·釋音義 작업의 의미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오보라 OH, Bo-ra.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후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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