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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寺刹의 존립 실태 (1) - 경상도 지역 私撰 邑誌 ‘佛宇’ 조의 검토 -

원문정보

The Reality of Buddhist temples in the Late 16th Century to the Early 17th Century (1) - Review of records related to temples in the Eupji, private local geography -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사찰의 존립 실태 (1) - 경상도 지역 사찬 읍지 ‘불우’ 조의 검토 -

손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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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Eupji, private local geography in the Late 16th Century to the Early 17th Century on Gyeongsang-do areas include Hamju-ji (Haman), Yeongga-ji (Andong), Jinyang-ji (Jinju), Sangsan-ji (Sangju), and Ilseon-ji (Seonsan). These Eupji have records of Buddhist temples. The study reviewed these records to understand the reality of the temples at that time. A brief summary of the results of the review follows: First, i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the number of temples was far higher than the 1,600 listed in Dongguk-yeojiseungram, an official national geography. Second, there were not many Confucian educational institutions such as Seowon and Seodang in the region during this period. So the influence of the temple must have been great. Third, many temples were destroyed by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the late 16th century before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re were more temples and more activities such as publishing Buddhist books than after the war. Fourth, the diversion to public institutions and Confucian educational institutions was not the main reason for the ruin of the temple. Fifth, during this period, temples were maintained and rebuilt with the participation of various layers, such as bureaucrats, aristocrats and commoners. Therefore, a detailed study on the aspects of Buddhist temples being maintained in the local community during the Joseon Dynasty is needed.

한국어

이 논문은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 편찬된 현존하는 경상도 지역의 私撰 邑誌인 『咸州誌』 , 『永嘉誌』 , 『晉陽誌』 , 『商山誌』 , 『一善誌』 의 ‘佛宇’ 조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를 통해 당시 사찰의 양적 실태와 존립 양상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연구 방법과 연구내용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검토 결과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연구 방법의 측면이다. 첫째, 사찬 읍지의 불우 조는 『東國輿地勝覽』 , 『東國輿 地志』 등과 같은 전국 지리지보다 수록 정보 및 기술 내용이 충실하다. 둘째, 사찬 읍지간에도 편찬 방침 및 수록 기준에 차이가 있고, 불우 조 수록 내용의 충실성에도 차이가있다. 셋째, 읍지에 따라 후대에 계속 추보하여 편찬된 경우가 있으므로, 해당 불우 조의정보가 어느 시기의 것인지 주의를 요한다. 넷째, 전국 지리지에는 해당 군읍의 사찰을대부분 수록한 것이 아니라 주요 사찰을 선별 수록한 것이다. 특히 『여지승람』 은 ‘현존사찰 수록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현실에 존재하던 사찰이 다수 수록되지 않았으므로, 이 분야를 연구할 때 주의를 요한다. 다음으로 연구 내용의 측면이다. 첫째,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조선의 지역 사회에는 『여지승람』에 수록된 1,600여 개소를 상회하는 많은 수의 사찰이 존립해 있었다. 둘째,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는 아직 書院, 書堂 등이 사찰에 비해 지역 사회의경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다. 셋째, 임진왜란으로 인해 많은 사찰이 망폐하였고, 그럼에도 다수의 사찰이 존립하였고 중창되었다.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후반에는 사찰의 수가 더 많았고, 불교서적 간행과 같은 사찰의 활동도 더 활발하였다. 넷째, 사찰건물과 遺址의 官司나 서원으로의 전용은 사찰 망폐의 주요 사유가 아니었다. 다섯째, 이 시기에도 사찰의 중창이 다수 이루어졌으며, 여러 계층의 참여로 여러 목적에 따라중창되었다. 이처럼 이 시기의 조선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적, 물적 토대없이 유지되기 어려운 사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유불 대립, 국가의억압 등의 이분법적 인식은 조선 사회의 이해에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언
Ⅱ. 군읍 소재 사찰의 양적 실태
1. 읍지 수록 사찰의 존립과 망폐
2. 읍지 수록 학교·서원과의 비교
Ⅲ. 사찰의 존립 양상과 망폐 사유
1. 사찰의 양적 증감 추이 재검토
2. 사찰 망폐 사유와 중창 사례 검토
Ⅳ. 결언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손성필 Sohn, Seong-phil.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동국대 사학과 겸임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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