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discussed the Qing envoys who visited the Samjeondo Monument erected after the Qing invasion of 1636 and the memories of Qing and Joseon. Joseon submitted to Qing after losing the Qing invasion of 1636 and erected a monument on Samjeondo as demanded by Qing. The monument was erected at the site where King Injo surrendered to Hongtaiji and it was one of the official places where the Qing envoys to Joseon visited during their stay in Joseon. The Qing envoys remembered their imperial history while visiting the monument and commemorated the visits by copying the epitaph. Although not all envoys to Joseon visited Samjeondo, all of the envoys shared the same memory of victory. Joseon also remembered the Samjeondo Monument in a certain way. The scholars of Joseon lamented the reality as the Samjeondo Monument was erected in its own land as the symbol of a lost war and submission to Qing. Nevertheless, Samjeondo has a significant meaning for the scholars of both Korea and China. There were different interpretations of Samjeondo in Qing and Joseon. This memory continued even after the Samjeondo Monument, which welcomed the Chinese envoys along with Yeongyunmun Gate, in 1895.
한국어
이 논문은 병자호란 이후 세워진 삼전도비를 방문한 청의 사신과 이에 대한 양국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병자호란에서 패배한 조선은 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그들의 요구에 의해 삼전도에 공덕비를 세웠다. 홍타이지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장소에 세워진 비는 조선으로 파견된 청의 사신들이 서울에 머무는 기간에 방문하는 공식적인 장소 중 하나였다. 청의 사신은 삼전도비를 관람하면서 제국의 기반을 다진 자국의 역사를 떠올렸으며 기념으로 비문에 새겨진 글씨를 정밀하게 써서 가져갔다. 조선을 방문한 모든 사신이 삼전도로 향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비를 둘러본 다른 사신과 마찬가지로 공통적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조선도 삼전도비를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했다. 자국의 영토에 패전과 사대의 상징으로 세워진 삼전도비에 대해 조선의 지식인은 자신들의 이상과 다른 현실의 모습에 한탄과 울분을 토해냈다. 그럼에도 두 국가의 지식인에게 삼전도는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청과 조선의 삼전도에 대한 기억은 각자의 이해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1895년 중국 사신을 환영하던 영은문과 함께 삼전도비를 쓰러트린 이후에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목차
II. 三田渡碑의 건립
III. 勅使 일행의 행차와 조선의 응대
IV. 三田渡에 대한 양국의 기억
V.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