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Sekino Tadashi(關野貞)'s Study on Korean Culture during 1900s~1910s
초록
영어
Korea wa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from 1910 to 1945. Imperial Japan elaborately investigated Korean traditional culture, history, remains and relics for the purpose of effected rules. Many Japanese scholars were mobilized to exam Korean Culture. Sekino Tadashi(1867~1935) took a important roles for these tasks who was a professor of The Tokyo National University. He organized Korean traditional remains and relics and wrote the Koran Art History at 1932 which was fist published books on this subject. This article examined Sekino Tadashi's writings and activities on Korean Culture during 1900s~1910s. First, at the 1900s, he prescribed the identity of Korean culture which approaches based on the theory of Orientalism. Second, at the late of 1900s, he eagerly tried to spread his arguments to Japanese and Korean people through both public lectures and publishing books. Third, at the 1910s, he had authorities in the Colonized Korean societies because his works were widely introduced on newspapers and were cited by Korean scholars. Sekino Tadashi's Study on Korean Cultu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Japanese Orientalism to the colonized Korean peoples. Many Korean scholars who against Japanese forced insistences confronted Sekino's theory during 1920s~1930s. So the examination of his works and activities on Korean culture are the important step to approach the themes of the origin of Korean Studies. Therefore we will need to compare with Sekono’s theory and other Japanese scholars who cooperated to establish Imperial Japanese rules through academic works on Korean Studies.
한국어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통치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학술적 영역에서 조선 문화에 관한 조사사업을 치밀하게 진행했다.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한 조선 예술에 관한연구가 성립‧수행되는 과정에서 일본 관학자(官學者)들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1867~1935)였다. 일본 도쿄대학 교수였던그는 190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까지 조선 유적과 유물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우리나라 미술사를 서술한 인물이었다. 세키노 타다시는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 위원,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 위원을 지냈으며, 1928년 도쿄대학을 정년퇴직하고, 1935년 68세로 사망했다. 1900~1910년대 세키노의 조선 문화 연구 활동은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인 1900년대에는 지역적‧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부분적 사례를 조선문화 일반으로 규정하는 ‘식민학’의 기원을 형성했으며, 두 번째 시기인 1900년대 말에는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대중적 차원에서 조선 유물이 서열화, 등급화를 제시했고 세번째 시기인 1910년대 그의 학술 활동과 연구 성과는 조선인 연구자들에게 ‘과학적, 근대적’ 연구로 받아들여 인용되거나 ‘적극적’으로 평가되었다. 세키노 타다시의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 문화 연구는 곧 ‘조선학’의 형성과정과 연결되었다. 그의 조선 문화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는 것은 당대 식민지 조선인에게 미친 영향은 물론 1920년대 이후 활발히 일어나는 조선학 연구의 내용을 검토하는 작업의 일환이 된다. 이를 통해 한말~일제강점기 ‘조선학’ 연구의 다양한 계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향후 한국학 연구의 기원과 계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세키노와 다른 일본인 관학자(官學者) 사이의 논리의 동이(同異)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목차
Ⅰ. 서론
Ⅱ. 세키노 타다시의 1900년대의 조선 문화 연구
Ⅲ. 세키노 타다시의 ‘병합’ 직전 조선 문화 연구
Ⅳ. 세키노 타다시의 1910년대의 조선 문화 연구
Ⅴ. 결론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