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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묘의 동조궁 권청에 관한 연구 - 막번의 상호인식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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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Daimyo’s Kanjo of Tosho-gu - Focusing on mutual cognition of Bakuhan -

양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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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okugawa Ieyasu, the first generals of the Edo shogunate, was enshrined as a god named Tosho-Daikongen, after death. At Nikko Tosho-sha, which enshrines this god, was established. In the third generation Shogun’s period, with the permission of the Tennou Tosho-sha turned into “Tosho-gu”. In this period, there was also a movement to make meaning as the ancestor of the Tokugawa family, not only the majesticization of the looks of Toshogu, but obliging Daimyo’Shyasam to Toshogu. Also had the presence of more than 550 Kanjo. The principal agent of Toshogu’s Kanjo is very diverse, such as daimyo, village, individuals. In this paper, I attempted to analyze the Daimyo’s Kanjo. This research is to clarify the intention of the Shogunate to recognize Tosho-gu and the Daimyo’s Kanjo. Daimyo’s Kanjo is about 40 cases which are only a few in all of Kanjo. As the characteristic of the Daimyo’s Kanjo, half of the case having a relation by marriage with the shogunate. Also, in the case of the Kanjo Tosho-gu, only nine Toshogu were admitted with the official permission of the shogunate. The shogunate permitted the Kanjo only for some families Daimyo and the Kunimochi Daimyo. This shows that the Tosho-gu, which was established based on the Tosho-Daikongen, was restricted to the function of enshrining the ancestors of the Tokugawa family. The shogunate finds that Ieyasu who became deified has not been forced to worship all over Japan. Rather, the intention of the Shogunate only through the Daimyo’s Kanjo seems to have aimed at the formation of a powerful governance system that combines some families Daimyo and the Kunimochi Daimyo with the Tokugawa family’s ancestor god mediated

한국어

에도막부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망 후 동조대권현으로 신격화 되어 닛코에 동조사라는 신사가 건립되었다. 3대 쇼군 이에미쓰시기에는 천황으로부터 ‘궁’의 칭호를 받아 동조궁이 되었으며 대대적인 재건(造替)을 통해 웅장한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이 시기에는 외형적인 모습 뿐 만 아니라 다이묘들에게 동조궁에 대한 사참을 의무화 하는 등 도쿠가와 가문의 선조로서의 의미 뿐 만 아니라 일본 전국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위치 치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또한 동조궁은 전국에 550여곳에 권청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동조궁 권청의 주최는 다이묘, 무라, 개인 등 매우 다양하다. 본고에서는 그 가운데 다이묘 권청에 대하여 알아봄으로써 막부의 동조궁에 대한 인식, 다이묘의 권청 의도를 보다 명확히 하고자 한다. 다이묘의 동조궁 권청은 전체 권청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한 40건 정도이다. 다이묘 권청의 특징은 먼저 막부와의 인척관계인 다이묘가 반수를 점하고 있으며 권청된 동조궁의 경우 막부의 공식적인 허가를 얻어 권청된 동조궁은 아홉 곳에 불과하다. 막부는 극히 일부의 가문다이묘와 구니모치 도자마 다이묘에게만 권청을 공식적으로 허가하였다. 이는 동조대권현이란 신호를 받아 세워진 동조궁이 도쿠가와 가문의 선조를 모시는 기능에 한정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막부의 ‘마음에 없는 권청’이 행해질 것에 대한 염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이에야스를 신격화한 동조대권현을 강제적으로 일본 전역에서 모시게 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다이묘 권청만을 통해 막부의 의도를 파악해 본다면 도쿠가와 가문의 선조신을 매개로 일부의 가문 다이묘와 구니모치급의 도자마 다이묘를 아우르는 강력한 통치 체제의 형성을 꾀하였다고 생각된다.

일본어

江戸幕府の初代将軍である徳川家康は死亡の後、東照大権現という神として祀られた。日光にはこの神を祀る東照社が創建された。3代将軍家光期には天皇の許可を得て「東照宮」になった。この時期には東照宮の外形の雄大化だけではなく、大名たちに東照宮の社参を義務付けるなど徳川家の先祖としての意味付けようとする動きもあった。また、東照宮は全國に550余のところに勧請されていることがわかる。東照宮勧請の主体は、大名・村・個人などとても多様である。本稿では、その中で大名の勧請の分析を試みた。この研究は幕府の東照宮に対する認識と大名の勧請の意図を明らかにすることである。大名の勧請は全体勧請の中で僅かである40件ほどである。大名の勧請の特徴は、まず幕府との姻戚関係がある大名が半数を占めている。また、勧請された東照宮の場合、幕府の公式的な許可を得て勧請された東照宮は九カ所だけである。幕府は一部の家門大名と國持格の外様大名だけに勧請を許した。これは東照大権現という神号を受けて立てられた東照宮が徳川家の先祖を祀る機能に限定されていたことがわかる。また、幕府の「心おこらぬかんしわう」が行われることを懸念されたことがこのようなことを証明している。すなわち、神格化した家康を強制的に日本全国で祀らせなかったことがわかるのである。むしろ、大名の勧請だけを通じて幕府の意図を述べると、徳川家の先祖神を媒介に一部の家門大名と国持格の外様大名を合わせる強力な統治体制の形成を図ったと思われる。

목차

<요지>
Ⅰ. 머리말
Ⅱ. 동조궁의 권청
(1) 에도막부의 봉건제에 있어 동조궁의 의미
(2) 다이묘의 동조궁 권청과 막부의 인식
(3) 동조궁 권청 실시를 통해 본 다이묘의 의도
Ⅲ.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저자정보

  • 양익모 Yang, Ik-mo.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책임연구원. 일본근세사 전공.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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