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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원구도(元寇圖)와 <몽골침입에마키(蒙古襲来絵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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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ōko Shūrai Ekotoba(蒙古襲来絵詞) and Painting of Mongol Invasions in Modern Japan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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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experience that the Mongol invasions of Japan took placed in 1274 and 1281, and Japan was spared by kamikaze became a source to strengthen Japanese traditional consciousness as a divine land, thought of nation, and reliance on the gods in Buddhism Shinto. Its experience also inspired the birth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元寇図). With an exception of Mōko Shūrai Ekotoba(蒙古襲来絵詞: Illustrated Account of the Mongol Invasion), in comparison with the 14th century literature, such as Taiheiki(太平 記), Hachimangudokun(八幡愚童訓), Masukagami (増鏡), the number of the Mongol Invasions Painting is limited and its representation was not constant. In the early examples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which was painted in Edo Period Ema(絵馬),or Ukiyoe (浮世絵) by UTAGAWA Kuniyoshi(歌川国 芳:1798-1861), various scenes, including ground battles, both sides of camps, and naval battle, were enumerated while Mongolian armed vessels were emphasized as destroyed by kamikaze in KIKUCHI Yosai(菊池容齋:1788- 1878)’s Painting of Mongolian Invasions. The significant change in the images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was related to the donation of Mōko Shūrai Ekotoba(蒙古襲来絵詞: Illustrated Account of the Mongol Invasion) to Royal Family by Oyano(大矢野) Family in the early Meiji period. The painter who drove changes in the image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and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to establish the Monument of Mongl Invasions which were launched with the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in 1894, was Yada Issho(矢田一嘯:1859-1913). He studied Western style painting in America after studying Japanese painting as student of KIKUCHI Yosai. After completing Grand Oil Painting of Mongol Invasion in 1896, he opened to people. In the Grand Oil Painting of Mongol Invasion which composed of 14 pieces, YADA created new image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with usage of Mōko Shūrai Ekotoba and Kamikaze Scene seen in the KIKUCHI’s Painting of Mongol Invasion. In particular, he completed the dramatic and dynamic scene with usage of scene of OYANO brothers in Mōko Shūrai Ekotoba, which became a pattern. During the time of the Asia-Pacific War, GONDO Taneo(権藤種男:1891- 1954) and ISODA Choshu(磯田長秋:1880-1947) were succeeded to the same image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and its image was never changed since then. Moreover, while the number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or Kamikaze diminished its images, as a phenomenon of inverse proportion which appeared with increase of Kamikaze suicide commando during the end of same era.

한국어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과 가미카제(神風)로 인한 격퇴의 경험은 일본의 전통적인 신국사상의 강화와 함께 국가의식의 고양과 신불의 영험에 대한 의존적 관념이고양되는 계기가 되었고 원구도가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회화 분야에서 몽골침입을 형상화한 원구도의 수량은 적고, 도상도 일정하지 않았고 막말유신기에 활동한 기쿠치 요사이(菊池容 齋)의 원구도에서는 가미카제에 의해 풍비박산 나는 몽골병선이 강조되어 있다. 메이지(明治)시대 전기까지 가미카제를 중심으로 묘사된 원구도의 도상에 큰 변화가 나타난것은 <몽골침입에마키(蒙古襲来絵詞)>가 천황가에 헌납되고 일반에 알려진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야노가(大矢野家)가 소장하고 있던 <몽골침입에마키>가 1890년 천황가에 헌납되고 원구도의 도상에 영향을 준 것은 1894년 청일전쟁의 발발 직후 원구기념비(元寇記念碑) 건립운동에 관여한 화가 야다 잇쇼(矢田一嘯)에 의해서다. 기쿠치 요사이에게서 그림을 배우고미국에 유학하여 서양화법을 익힌 야다 잇쇼는 1896년에는 <원구대유회(元寇大油繪)>를 완성하여 일반대중에 공개했다. 전부 14점으로 이루어진 <원구대유회>는 기쿠치 요사이의 가미카제 장면과 <몽골침입에마키>의 장면 등을 융합, 활용하여 이전에 없던 화면을 제시함으로써원구도의 도상에서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했다. 특히 <몽골침입에마키> 가운데 오야노가 삼형제가 몽골전함에 다가가는 장면을 활용하여 더욱 큰 스케일의 화면에 드라마틱한 장면을 제시하였고,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였다. 이후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원구도는 곤도 다네오(権藤種 雄), 이소다 죠슈(磯田長秋) 등의 그림에 계승되며 도상의 고정화 현상을 보였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종반 몽골침입 장면 또는 ‘가미카제’ 장면의 형상화가 적어진 현상은 가미카제특공대의 비중증대와 반비례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어

1274年と1281年、二回に亙って行われた蒙古の侵入と神風による撃退の経験は日本の伝統的な 神国思想の強化と国家意識の高揚、神仏の霊験への依存観念が強まるきっかけになり、元寇図の 出現の背景となった。かつて文学の分野で『太平記』、『八幡愚童訓』、『増鏡』、などの例で 触れられた事実と比べてみると絵巻の<蒙古襲来絵詞>を例外とすれば蒙古の侵入の場面を絵画の みに形象化した元寇図の例は少なく、図像も様々だった。時期的に早い例の18世紀の絵馬には両 軍陣営と海戦の場面が描かれており、歌川国芳(1798-1861)の浮世絵<高祖御一代略図弘安四年 上人利益濠虎軍敗北>では地上戦が中心をなしている。幕末維新期に活動した菊池容齋(1788- 1878)の一連の元寇図では神風によって壊滅された蒙古の兵船が強調されている。 明治時代前期まで神風を中心に描かれた元寇図の図像に大きな変化が現れたのは<蒙古襲来絵 詞>が天皇家に献納され、一般に知られたことと密接な関連がある。大矢野家が所蔵していた<蒙古 襲来絵詞>が1890年天皇家に献納された後、元寇図の図像に影響を与えたのは1894年日清戦争の 勃発直後起きた元寇記念碑建立運動に関わった画家矢田一嘯(1859-1913)によるところが大きい。 菊池容齋に学びアメリカで留学し西洋画報を習った矢田は1896年<元寇大油絵>を完成し一般に公 開した。14点からなる<元寇大油絵>は菊池容齋の神風場面と<蒙古襲来絵詞>の場面、などを融 合、活用し以前にはなかった画面を提示し元寇図の図像には新しい伝統を確立した。とりわけ、<蒙 古襲来絵詞>のなかの大矢野三兄弟が蒙古戦艦に近づく場面を活用し、もっと大きいスケールの画 面にダイナミックでドラマチックな場面を提示し、一つのパターンとなった。 以後アジア太平洋戦争期において元寇図は権藤種男(1891-1954)、磯田長秋(1880-1947)、 などの絵に継承され図像の固定化現象が現れた。また、アジア太平洋戦争期終盤に入って蒙古襲 来の場面、あるいは神風場面が少なくなった現象は神風特攻隊の比重の増大に反比例したものとし て説明されよう。

목차

I. 머리말
II. 일정하지 않았던 메이지(明治)시대 중기까지의 원구도 도상
III. <蒙古襲来絵詞>의 천황가 헌상과 원구도 도상의 변용
IV.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원구도 도상의 고정화
V. 맺음말
reference
abstract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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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 김용철 Yong-chol, KIM.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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