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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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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07년 대핚제국에서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핚 세 명의 밀사 사건이 근대 국가의 시스 템이 갖춰지던 시절 국가 PR의 기능을 최초로 담당핚 역핛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연구이다. 유 럽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는 세계의 열강들이 다 참석하는 회의였으 며,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가 주관하는 회의였다. 니콜라이 황제는 광무 황제(고종)에게 초청장을 보냈고 이에 광무 황제는 세 명의 사신을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 권이 박탈된 대핚제국은 일본의 방해로 인해 일본 정부 몰래 밀사를 파견하게 된다. 세 명의 밀 사들은 헤이그에 무사히 당도하긴 했지만, 일본 외교관들의 방해로 인해 회의장 안에는 입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유럽 및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 쇄도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 져오게 된다. 이 위종 열사의 두세 차례의 기자회견을 포함하여 많은 언론들이 대핚제국의 세 열 사들을 조명해 주고, 그들의 주장을 신문에 보도해 줌으로써 대핚제국(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 열방들에게 알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회의장에 들어갔어도 일본 외교관들의 방해로 밀 사들의 뜻을 관철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오히려 회의장 밖에서 많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언론보도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국가 PR의 중요핚 기회를 얻게 된다. 본 연구는 이러핚 시각에 초 점 맞추어 근대 국가로 전환되는 시점에 대핚제국이 노력했던 최초의 국가적 PR사건을 거시적 차원에서 학문적으로 규명하고자 핚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