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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자료로 본 1650년대 흑룡강원정(나선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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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o-Korean Expeditions to the Amur of the 1650s in Russian Sources

계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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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With the Manchu conquest of Ming China in the mid-1600s, Manchuria became a sparsely populated region: the majority of the Manchu population left their homeland and rushed into China. The Qing authority also concentrated all its energy on the military campaigns against Ming loyalists in the south. It was in this situation that new-comers began to infiltrate into northern Manchuria alongside the Amur (Heilung) River. In the early phase of the Manchu-Russian conflicts, the Manchu suffered some successive defeats because they were surpassed in firepower and mobility. In the 1650s, for this reason, the Manchu authority demanded twice that Chosŏn send some troops armed with Korean-type muskets. A variety of Korean sources provide the details of the expeditions from a Korean perspective, while few Chinese sources tell the expeditions. Some Russian sources such as combat reports and survivors’ statements also provide the various activities of the Cossack-Russians as well as the conflicts per se. Yet they were hardly used among scholars so far. Referring to Russian sources, this paper recasts the expeditions from a Russian perspective with emphasis on the Cossack-Russians who survived the battles.

한국어

흑룡강원정(나선정벌)을 전하는 사료는 조선 측 자료가 거의 절대적이다. 원정을 주도한 청 측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정의 상대방인 러시아 쪽에서도 적지 않은 자료를 남겼다. 현지 지휘관이 상부에 보고한 패전보고서와 생존자들이 상부기관에서 진술한 신문조서 등이다. 러시아 자료의 분석을 통해 이번에 새롭게 확인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650년대 흑룡강 유역의 러시아 부대에 대한 상부의 지원은 매우 열악하였다. 이런 상황이 바로 러시아 부대들이 송화강을 따라 남하를 거듭 시도한 주요 이유라 할 수 있다. 둘째, 러시아 병사들이 우수한 개인 화기로 무장한 덕분에 현지인들로부터 모피를 마구 징수할 수 있었지만, 소규모로 움직일 경우에는 현지인들과 충돌이 잦았고 인명 손실도 컸다. 이는 필연적으로 흑룡강 유역 현지와 상부 지휘소 사이의 소통에도 큰 장애였다. 셋째, 2차 원정 때 참패한 스테파노프 휘하 병력의 전사자 수는 220명 정도였다. 넷째, 스테파노프의 패전과 함께 흑룡강 일대의 러시아 병사들은 청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청의 후속 공세 가능성 및 최고 지휘관 파슈코프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은 그들의 공포감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이런 공포심은 청군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상대방을 잘 몰랐기에 나타난 ‘미지의 공포’라 할 수 있다. 다섯째, 2차 교전 당시 러시아 측이 파악한 적군(청군)의 병력 규모는 매우 정확한 편이었고, 청군(연합군)이 파악한 적군(러시아)의 병력 규모도 마찬가지였다. 종합하면, 러시아 자료는 교전 자체보다는 교전을 전후한 상황을 잘 전해준다. 이는 이미 패퇴한 병사들로부터 전투 상황을 일일이 파악하기보다는 전투의 결과 및 그 대응책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던 상부기관의 입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측 자료가 주로 출병 동기, 청과의 관계, 교전 상황 등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과 대조적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차 교전(1654) 관련 자료
3. 2차 교전(1658) 관련 자료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계승범 Kye, Seung-bum.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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