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analyzes the image of a tiger which appears in ‘tiger hunt’ theme in the Ukiyo-e during the Edo period. Ukiyo-e is a type of engraving which represents the popularization of Art. Since Ukiyo-e was mass produced, it was approachable to the public. So, it is likely that the image of a tiger in Ukiyo-e was preferred by the public at that time. Therefore, by comparing the difference between the period when the tiger image was imported from other countries and the period when the tiger image is independently developed in Japan, this study can draw out the culturally distinctive feature of tiger image in Ukiyo-e engraving. The image of a tiger which was brought into Japan with Buddhism had highly religious features. However, as the Muxi’s painting from the Song dynasty is introduced to Japan, the image of the tiger settled as animal painting. On the other hand, due to Japan’s natural environment where the tiger cannot inhabit, the image of a tiger as an auspicious species and its significance has remained to be succeeded. The meaning of tiger image changed during the Edo period. With the development of Ukiyo-e, the distinctive, Japanese image of tiger formed. This distinction is based on the following three factors: First, painter’s desire to draw a tiger in uninhabitable environment caused a distortion in image. Second, as one-to-one confrontation composition in Ukiyo-e became prevalent, to emphasize the hero’s bravery, the tiger image was not treated as auspicious species but mere enemy and antagonist. This led the tiger's appearance to be exaggerated in a grotesque manner. Third, as Tokugawa shogunate censored the painting of real people, the tiger is substituted its role as a Kato Kiyomasa , a hero of the ‘tiger hunt’. In conclusion, Edo period’s tiger image in Ukiyo-e has contrasting double meaning; the ‘external enemy’ of Japan and the symbol of Kato Kiyomasa. Moreover, the tiger becomes a symbol of the Samurai spirit. This image of the tiger as an antagonist was a unique feature of Japan, which was not prevalent in China and Korea.
한국어
본 연구는 에도시대 우키요에의 ‘호랑이 사냥’ 주제에 나타난 호랑이 이미지에 대해 해석한다. 우키요에는 판화로서 예술의 대중화를 대표하는 매체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 대중들이 접근하기 비교적 쉬워 우키요에에서 다루어진 호랑이 이미지는 당시 대중들이 선호한, 혹은 선호하도록 요구당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본의 호랑이 이미지를 외부에서 유입된 시기와 독자적으로 발달한 시기를 나누어 이미지가 변화한 과정을 살피면 우키요에에 나타난 호랑이 이미지가 가진 차별된 문화적 특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외부에서 전래된 호랑이 그림은 불교와 함께 유입되면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다. 그러나 송대 화가 목계의 그림이 다수 전래되면서 점차 영모화로서 이미지가 정착하였다. 그러나 호랑이가 식생하지 않는 일본의 환경적 특성상 호랑이는 일종의 상서로운 동물로서 벽사적・길상적 의미는 변하지 않고 계승되었다. 이미지의 의미가 변화한 것은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다. 우키요에의 발달과 함께 일본만의 독자적인 호랑이 이미지가 형성되는데, 차별화된 이미지가 발생한 것에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호랑이가 식생하지 않는 환경에서 화가들의 사생 열망이 이미지를 왜곡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둘째, 우키요에에서 사람과 호랑이의 1대1 대결 구도의 그림이 성행하면서 주인공의 무용을 강조하기 위해 호랑이가 벽사적 존재가 아닌 ‘외부의 적’이자 ‘안타고니스트’의 역할로 기능하며 호랑이의 외형이 흉맹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과장되었다. 셋째, 에도 막부에서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그리는 것을 검열하면서 호랑이가 호랑이 사냥 일화의 대표적 주인공인 가토 기요마사를 대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에도 말기 우키요에 그려진 호랑이 이미지는 일본 ‘외부의 적’이라는 의미와 함께 가토 기요마사를 상징하는 이중 의미를 획득하고 나아가 사무라이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발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안타고니스트 호랑이 이미지는 중국과 한국에서는 성행하지 않은 일본만의 독자적인 이미지였다.
목차
Ⅰ. 序論
Ⅱ. 일본 호랑이 이미지의 유래
1. 송대 화가 목계(牧谿, 1225-1265)와 용호도
2. 조선의 왜관수출화 속 호랑이 이미지
3. 일본 호랑이 그림의 외래적인 특징
Ⅲ. 호랑이 이미지와 에도시대 사무라이 정신의 만남
1. 일본화된 호랑이 이미지의 탄생
2. 우키요에 속 호랑이 사냥 주제
3. 사무라이 정신과 호랑이 이미지의 관련성
Ⅳ. 結論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