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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출토 ‘馬朗’명 칠기의 의미

원문정보

Meaning of ‘Marang’ Written on Lacquerware Excavated from The South Side of the Hwangnamdaechong Tomb

황남대총 남분출토 ‘마랑’명 칠기의 의미

정일, 이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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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mong the lacquerwares excavated from the south side of the Hwangnamdaechong Tomb in 1973~1975, the name ‘Marang’ on a lacquerware has been identified as a historical person who is well known as a master baduk(go, 碁, 中國:圍棋)-player during the West Qin era, 3rd and 4th centuries. ‘Marang(馬朗)’ had earned the title as a great master of baduk during his life. Currently, the only historical records about him remain in China, and it is the first time that a baduk-related artifact has been identified. Given that all of the lacquerwares excavated from the north and south sides of the Hwangnamdaechong Tomb turned out to have been made in China, this indicates a high level of activity in Silla’s international trade when many of the Chinese lacquerwares were imported and used during the 4th and 5th centuries. Thus, it is necessary to challenge the viewpoint that the Northern relics and culture were imported to the ancient Korean Peninsula through the Land Silk Road only. The relics demonstrate that Silla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marine activities in ancient times, which expands the previous perception that marine activities were concentrated in and around Baekje. Many relics, including the shellfish from Okinawa, were imported to Silla and Gaya through the ocean. One must recognize the possibility that various glass products were also imported through the sea routes. Furthermore, the small round pebble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s from the 5th and 6th centuries, such as the Hwangnamdaechong Tomb, the Cheonmachong Tomb, and the Geumgwanchong Tomb, are likely baduk stones. As such, it can be proven that baduk was spread to Silla at an earlier period than the 5th century, before the King Gaero period of Baekje as written in ‘The History of Three Dynasties.’

한국어

1973~1975년에 발굴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칠기 중 ‘마랑(馬朗)’명문은 3~4세기대 서진(西晉)시기에 활약한 바둑의 최고수로 기성(棋聖)의 칭호를 얻었던 인물임을 확인하였다. 현재 중국에서도 ‘마랑’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이며, 바둑관련 유물로 실물이 확인된 것은 황남대총 남분 칠기에서 처음이다.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 출토 칠기는 모두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분석된 결과로 볼 때 4~5세기대 상당수가 수입되어 사용되거나, 고분에 매납된 것을 본다면 당시 신라의 국제교역의 수준은 매우 활성화되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육상실크로드를 통한 북방 유물과 문화의 유입을 중심으로만 본 관점의 탈피가 필요하다. 당시 백제 중심으로 해상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인식에서 확대하여 신라도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는 점이 유물에서 증명되고 있다. 해양을 통해 오키나와산 조개 등 많은 유물이 신라·가야로 수입되었고, 각종 유리제품의 유입경로 역시 해로를 통하여 수입될 가능성에 대해 시야를 넓혀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황남대총 남분, 천마총, 금관총 등 5~6세기대 고분에서 출토된 소형의 둥근 자갈은 바둑돌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개로왕대 바둑관련 기록보다도 이른 시기에 신라로 바둑이 보급되었음을 유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I. 머리말
 II. 한국과 중국의 바둑관련 유물 현황
  1. 한국 바둑관련 유물
  2. 중국 바둑관련 유물
 III. 한ㆍ위ㆍ진ㆍ남북조시대 바둑문화
  1. 고사에 보이는 바둑문화
  2.바둑 기품제(棋品制)와 기주(棋州)의 성립
 IV. 황남대총 '馬朗'명 칠기의 의미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정일 Chung, Il. 목포대학교
  • 이은석 Lee, Eun-Seok.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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