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Kim Gichu has a strong political inclination. Such an inclination led him to national movement during the time of Japanese colonialism. He was expelled from the middle school for his involvement in the strike against the change of the school name due to the Japanese people in Busan. He served as the chair person of Busan Youths Alliance, a national movement organization, and was imprisoned on the charge of sedition. After liberation of Korea from Japanese imperialism, he worked as an executive of the Preparatory Committee for Nation-building and was under indictment the violation of the law by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He also, together with his younger brother, devoted himself for educational work. He ran for parliament man but failed. Unfortunately, he joined to the Liberal Party and his political right was restricted on the charge of anti-democracy activity after 4.19 Revolution. After his political bankruptcy, Kim Gichu took refuge in Buddhism. He became a lay Buddhist leader after two years of meditation practice, and established Borimhoe, the first meditation practitioner organization led by a lay person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Borimhoe has unique in the following contexts. First, Borimhoe has college students and well educated people as the major party of her members. Second, unlike other Buddhist meditation traditions, dharma talks are major part of practice in Borimhoe. Borimhoe is existing for over fifty years. However, Borimhoe still remain as a small organization with very simple organizational structure.
한국어
김기추는 매우 적극적인 정치적 활동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한 활동성은 일제시대에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조선어교육 연장 등을 주도하다 퇴학당했으며, 청년기에는 민족운동 단체인 부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하다 소요죄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미군정청 법령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또 사업가인 동생과 함께 교육사업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후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자유당에 입당했다가 4.19혁명 후에 반민주혐의자로 공민권이 제한을 받아 정치적으로 파산하였다. 정치적으로 파산한 후 김기추는 1962년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그는 불교 수행을 한 지 불과 2년 만에 재가 선불교 지도자로 거듭나고서 1965년에 보림회(寶林會)를 창립하였다. 보림회는 재가불자가 지도자가 되어 창립한 한국불교 최초의 참선수행 단체라 할 수 있다. 보림회는 재가불자 참선수행 단체라는 점 외에도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보림회는 창립 당시부터 대학생들과 교육 수준이 높은 회원들이 주축이 되었다. 둘째, 참선수행 단체였음에도 설법을 매우 중시했다. 보림회는 건전한 참선 수행단체로서 50년 이상 존재하고 있지만, 양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보림회는 조직 체계가 매우 단순한데 이것 또한 양적 성장을 이루지 않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목차
I. 서론
II. 김기추의 생애
1. 불교에의 귀의 이전
2. 불교에의 귀의 이후
III. 보림회의 성격과 활동
IV. 김기추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평가
V. 보림회에 대한 평가
VI.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