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focuses on Monk Jaun Jiyeon(慈雲智演), who obtained fame as a virtuous monk-painter, in an attempt to determine the nature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monkpainters and Cians of monk-artists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1392-1910). Jiyeon(智演), who was active in Yeongnam province from the late eighteenth to early nineteenth century, inherited the painting style of his master Imhan. Both Eunhaesa Temple and Tongdosa Temple keep Buddhist paintings made by him, while some of their buildings contain traces left by him. He exerted a great influence on his followers.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Jiyeon joined the Seolsong(雪松) Clan as a disciple of Dobongyumun(道峰有聞). Having inherited the Buddha’s teachings from the Samyeong(四溟) and Peonyang(鞭羊) Clans, the Seolsong Clan provided the basis for Jiyeon’s activities as a monk-painter at Eunhaesa and Tongdosa Temples. He came to distinguish himself as a monk-painter in his work on Yeongsanjeon Hall at Baekheungam Hermitage in 1786. At the recommendation of the same Clan, he did a Buddhist painting (The Vulture Peak Assembly) for Geojoam Hermitage at Eunhaesa Temple. He also took part in the work of building and rebuilding the Bodeokgul Grotto and Mitaam Hermitage of Eunhaesa Temple, thus fulfilling his role as a monk-painter. In 1792, he moved to Tongdosa and made a hanging painting and a painting of Three Bodhisattvas there. By then, he had become a monk-painter of Yeongnam Province. It can be said that he owed much to the assistance of the Seolsong Clan at both Eunhaesa and Tongdosa for his successful career as a monk-painter. One notable thing about his production of Buddhist paintings at Tongdosa is that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construction of some buildings at the temple, raising funds for the work, without relying on the help of the Clan to which he belonged. Thanks to such efforts, he was able to start the work of making a new hanging painting for Tongdosa in 1792, in addition to the existing one made in 1764. Such a background enabled him, as a descendant of Samyeong Yujeong(四溟惟政), to portray his ancestor, who protected the genuine sarira of Sakyamuni Buddha and rebuilt the temple, as a guardian deity of Buddhism in his painting of the Three Bodhisattvas now kept at Tongdosa.
한국어
이 글에서는 조선후기 불교계에 존재했던 화승과 승려문중의 상호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 慈悲畫師이자 禪德으로 칭송받았던 慈雲堂 指演을 주목해 보았다.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영남에서 활동한 지연은 任閑의 화풍을 계승한 화승으로 은해사와 통도사에는 그가 조성한 불화와 참여한 불사가 뚜렷하게 남아있으며 후대의 영향도 상당하였다. 이처럼 수화승이자 선덕으로 이름이 높았던 지연의 활동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그의 출신 문중인 설중문중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18세기 후반 지연은 道峰有聞의 제자로 雪松門中의 일원이 되었다. 四溟門中과 鞭羊門中의 법맥을 계승한 설송문중은 지연이 화승으로 은해사와 통도사에서 활동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를 반증하듯 1786년 도봉유문의 세거사찰인 백흥암 영산전 불사에서 수화승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同門의 도움 속에 <은해사 거조암 영산회상도>를 조성하고 은해사의 산내암자인 普德窟과 彌陀庵을 창건·중수하여 은해사에 세거하는 설송문중으로써 역할을 다하였다. 한편 1792년에는 통도사에 진출하여 <통도사 괘불도>와 <통도사 삼장보살도>를 조성하면서 영남의 대표적인 수화승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지연의 행보는 은해사 설송문중과 연결된 통도사 설송문중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통도사 불화 제작에서 주목되는 점은 지연이 문중에만 의존하지 않고 화주와 공덕주로 나서 조성비용을 마련하는 등 불사의 실질적 주체로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연의 의지와 공덕은 1764년에 조성한 <통도사 괘불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792년에 새롭게 괘불도를 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아울러 사명유정의 후손으로 <통도사 삼장보살도>에 진신사리를 수호하고 사찰을 중창한 사명유정을 호법신으로 그릴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목차
Ⅱ. 雪松門中의 형성과 불교계의 위상
Ⅲ. 설송문중의 번성과 畵僧 智演의 출신 문중
Ⅳ. 지연의 조형 활동과 문중의 영향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