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기념비로서의 ‘조선학교’

원문정보

‘Choson Hakkyo’ as a Monument

박광현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Korean residents in Japan are not free from a colonial relationship with Japan that is the current dwelling place. As for those people, ‘Choson hakkyo(朝鮮學校)’ is not a merely general education institution. It itself is nationality and its symbol. Also, it is ‘space of small Choson’ that asserts the decisive existence in Japan, which is a foreign land where they have been continuously abused. The purpose of this writing is to examine about which role the ‘Choson hakkyo’ has played a role as a representation medium until being so, and about which image(像) it has had as a monument. In the process that GHQ(General Headquarters,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 performs a strategy for making the south of Korean Peninsula anti󰠏communist,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were excluded and became other󰠏ness. Such control policy did not begin to be noticeable until ‘Choson hakkyo’ was ordered to be closed primarily in 1948. And it was used to divide and rule while being propagated as if being a political education center of North Korean citizens following the secondary command of closure in 1949. Even what there was nothing but being the monument of ‘Choson hakkyo,’ which has been kept by North Korea's support like the memory of the first󰠏generation Korean residents in Japan, will be accredited to it. A nation state is the final form and memory in which the recollection and history are united, and is the system for social integration. However, a case of minorities in one society has fought against a nation state through forming the vernacular memory in the unofficial dimension. Korean residents in Japan belong to the group that has continuously made a crack in the history of social integration while existing outside of a nation state. One out of the rest is just the history=memory of ‘Choson hakkyo’, which originates from ‘4・24 Hanshin󰠏gyoyuktujaeng(阪神教育鬪爭)’. The history=memory of ‘Choson hakkyo’, namely, struggle history will be repeated while beginning from ‘April 24th Song’ on ‘4・24 memorial day,’ which celebrates the 70th anniversary this year(2018). It will be heard like the struggle for ‘becoming Chosonin(Korean person).’

한국어

재일조선인은 현재의 거주지인 일본과의 식민지주의적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그들에게 조선학교는 단순한 일반 교육 기관이 아니다. 그 자체가 민족이며 그 상징이다. 또한 계속 학대받아온 이국의 땅 일본에서 결정적인 존재감을 주장하는 ‘작은 조선의 공간’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기까지 조선학교가 재현 매체(medium)로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기념비(monument)로서 어떤 상(像)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GHQ가 한반도 남쪽에 대해 반공 국가화의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은 배제되고 타자화되었다. 1948년의 1차 조선학교의 폐쇄령 때, 비로소 그런 지배 정책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9년의 2차 폐쇄령 이후 북한 공민의 정치 교육장처럼 선전되며 분리 지배(divide and rule)를 위해 이용되었다. 1세대 재일조선인들의 기억처럼 북한의 지원으로 지켜온 ‘조선학교’의 기념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탓일 터이다. 국민국가는 기억과 역사가 통합된 최후의 형태이자 기억이며 사회통합을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한 사회의 소수자들의 경우는 비공식적 차원에서 토착(vernacular)적인 기억을 구성해 국민국가에 대항해 왔다. 재일조선인은 국민국가의 바깥에서 존재하며 끊임없이 사회통합의 역사에 균열을 내온 집단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4・24 한신교육투쟁’을 기원으로 하는 조선학교의 역사=기억이다. 올해(2018년) 70주년을 맞이하는 ‘4・24 기념일’에 또 다시 ‘4・24의 노래’로 시작하며 조선학교의 역사=기억, 즉 투쟁사를 되뇔 것이다. 그것은 ‘조선인되기’의 몸부림처럼 들릴 것이다.

목차

1. 해방 민족의 기념비 - ‘조선학교’
 2. ‘한신교육투쟁’ - 전후 재일조선인 투쟁사의 기원
 3. 결론을 대신하여 - ‘4・24교육투쟁’이라는 기억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저자정보

  • 박광현 Park KwangHyoun. 동국대(서울)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한일비교문화론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6,4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