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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朴世堂)의 『논어사변록(論語思辨錄)』을 통해 본 독자적 경전 주해 - 『논어집주(論語集註)』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A Study of Commentary on his own Scriptures through 『Sabyeonrok of Analects of Confucius』 by Park, Se-Dang- Focusing on the 『Variorum of Analects』 -

김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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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 variorum edition of analects was selected as book that was learned by confucian. This edition achieved the unique position of the analects interpretation comment in the Song dynasty and was spread of confucian in the Joseon dynasty. Because many scholars in the Joseon dynasty understood analects from Zhu-xi’s reason based on his variorum edition of analects, many studies of confucianism only tended to his reason. Nonetheless, Park Se-dang was not bound by Zhu-xi’s reasoning and freely claimed and wrote his opinion. It can be seen that the Park Se-dang is seen through a different aspect from the interpretation of the 『集註』, which escapes from the prevailing academic atmosphere. The commentary of Park Se-dang is aiming to be empirical and reasonable from the existing four-letter commentary (or commentary). It is meaningful that there was an attempt to view and understand the 经傳 from various angles through this academic attitude. His scholarship has maintained an open and independent attitude in a rational and empirical manner, deviating from the academic approach of the time when he was only pursuing speculative or ideal ideals. This point can be said to be a pioneer in various kinds of scholarship that was uniformly shaped such as a new scholarly pattern appearing afterwards, Confucianism claiming various theories.

한국어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활동하던 17세기 조선은 성리학이 당시 사회의 지배이념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사유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자신의 의견을 전면에 나서서 자유롭게 주장하기란 당시 학계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세당은 주희의 사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저술을 남겼다. 박세당은 기존 주자학적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던 학풍을 벗어나 『논어집주(論語集註)』의 해석과는 다른 양상을 통해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세당의 주해는 기존의 사서(四書) 주석서에서 벗어나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통해 경전(經傳)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학문관은 사변적이거나 형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하던 당시의 학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태도를 가지고 개방적이고 독자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이 점은 뒤이어 출현하는 새로운 학문사조 양상, 다양한 학설을 주장하는 유자(儒者)의 등장 등 획일화 되어 있던 당시 학풍에 다양한 물꼬를 튼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목차

<한글요약문>
 1. 서론
 2. 훈석(訓釋)에 따른 해석의 차이
  1) 주자: 격(格)=지(至), 서계: 격(格)=정(正)
  2) 禦 : 주자=‘응답하다’ 서계=‘거역하다’
  3) 주자: 여(與)=시(示), 서계: 여(與)=공(共)
 3. 끊어읽기에 의한 해석의 차이
  1) 주자 : 오여회언종일(吾與回言終日), 서계 : 오여회언(吾與回言) 종일(終日)
  2) 주자: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 서계: 상인호불(傷人乎不) 문마(問馬)
 4. 성리학(性理學) 용어에 대한 독자적 경전 주해
  1) 『논어사변록』의 반(反)주자학적 해석
  2) ‘성(性)’과 ‘천도(天道)’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희영 Kim, Hee-Young. 성신여자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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