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Two Gyeongin Railway Stations(京仁鐵道 停 車場) Constructed in Hanseong(漢城) - Focusing on Gyeongseong Railway Station(京城停車場) and Namdaemun Railway Station(南大門停車場) -
초록
영어
This article examines the process of constructing Korea`s first railway route Gyeongin line. In the process of constructing the first line, two railway stations were established in the capital of Korea, Hanseong, which means there were two railway stations being the gateways to the capital. Joseon opened its door to the world in 1876, a time when it started to realize the importance of Incheon as a path to meet the West as well as a connecting route to China, which was still considered crucial to Joseon. Direct steam ships to and from China, Japan and Russia started operating in Incheon, making it necessary for Gyeongin Railways to be installed to shorten physical distances between Incheon and Hansung. The installment of railways in Joseon originated from the forced signing of 『joiljamjeonghapdongjogwan(朝日暫定合同條款)』 ( Joseon-Japan Tentative Cooperation Provision) by Japan right after the breakout of the First Sino-Japanese War in 1894. At the time, however, the construction of railways failed to initiate due to the joint objections by the UK, US, Germany and Russia and it started after the Korea royal refuge at the Russian legation in 1896. Joseon signed <
한국어
이 글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노선인 경인선이 건설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경인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한성에는 두 곳의 철도정차장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는 수도의 관문이 되는 철도정차장이 두 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876년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조선은 여전히 중국과의 연결 루트를 중요시하는 가운데 서양과 만나는 길목인 인천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천에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직항 증기선이 왕래하기 시작했고, 수도 한성과물리적 거리를 좁혀줄 경인철도의 필요성 또한 제기되었다. 조선에 철도가 도입된 직접적인 계기는 1894년 청일전쟁 발발직후 일본의 강압으로 맺어진 『朝日暫定合同條款』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등에서 공동으로 항의하면서 철도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선철도의 부설은 1896년 아관파천 직후 시작되었다. 조선정부는 미국인 모스에게 경인철도의 부설을 허가하는 <<京仁間鐵路合同>>을 체결하였고, 이로부터 1년 이내에 모스는 기공식을 개최했다. 제물포에서 한성, 한성에서 제물포로 양방향에서 진행된 공사는 일본의 자금을 대여받은 모스에 의해 189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성정차장이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1898년 모스와 경인철도인수조합 간에 철도의 설계와 공사방법 등을 둘러싸고이견이 생긴 후, 다음해인 1899년부터는 일본의 경인철도인수조합이 직영으로공사를 재개했다. 1899년 9월 들어 경인철도의 제1공구에서 제3공구의 공사가 마무리되자, 9월 18일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경인철도가 개통되었다. 이 무렵 경인철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수도의 관문으로 기능할 경성정차장외에 남대문정차장의 신설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 남대문정차장은 한성에 건설될 경부철도의 정차장이었다. 1898년 9월 8일 경부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일본은 1년여 만인 1899년 9월 대한제국 정부와 협의하여 이 문제를 확정지었다. 이남대문정차장은 경인철도의 한강 이북일대 공사과정에서 건설되었다. 이에 따라한성에는 두 개의 경인철도 정차장이 들어섰다. 모스에 의해 건설된 경성정차장은 1905년 경부철도가 개통되면서 서대문역으로 변경된 후 1919년 폐지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남대문정차장은 1923년 경성역이 된 이래 오늘날에도 서울을 대표하는 철도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목차
2. 경인철도의 도입과 경성정차장
(1) 한성과 세계를 잇는 인천
(2) 『京仁間鐵路合同』과 新門 밖 정차장
3. 경인철도 건설과 남대문정차장
(1) 일본의 경인철도 인수
(2) 『京釜鐵道合同』과 南大門 밖 정차장
(3) 일본의 直營공사와 개통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