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Comparing Colonial City Planning of “Xinjing (Manzhouguo)” and “Gyeongseong(Chosun)”
초록
영어
In 1932, Japanese army of Gwandong area built a puppet government named “Manzhouguo”and select Changchun to be their new captial “Xinjing”. In the past, Japanese imperialism used “Haussmannization” to reconstruct old capital cities into new colonial cities. However, Xinjing was a newly constructed capital, similar to Western imperialism. The study starts from this point of view. Although Manzhouguo and Choson were located in different countries, and also were ruled by different colonial government in different era, Xinjing and Gyeongseong still had a common ground. They were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This study is composed in two parts. In the first part, based on the reason why Changchun was selected, we compare each background with the Gyeongseong. In the second part, we analyse the alternative plans and the final plan of Xinjing capital city planning and draw the characteristics of this planning. Then, we compare these characteristics with Gyeongseong’s city planning. The result of this study as follows. First, Xinjing city planning used traditional eastern palace placement with modern western city planning at the same time. Comparing to Gyeongseong and Taipei, this was a totally different method. Gyeongseong was redesigned by “Haussmannization”. which was based on Tokyo’s “Haussmannization”. However, due to the fact that these two cities had(or designed to have) the bases of traditional palace placement, the administrative agency were built along this main axis. The commerical axis were extend from the old commerical axis or were reconstructed into a new axis. The commerical axis had a strong influence of the people flowing from the railway station, so this axis was designed to be connected to the railway station. Second, both cities were reorganized by the railway network in order to apply “City Planning Act” after Manzhouguo was built. Due to this fact zoning and Land Readjustment Project were affected directly by railway system, also having strong relationships. Third, the way of supplying resources were different. Manzhouguo’s construction bureau first bought land of Changchun in order to cultivate and then sold the land with a higher price. This way, not only did they secured the budget which they need to built a new city, but also could control the city planning from the start. This was a very effective way to built a new capital. Gyeongseong was constructed under the ‘benefit principle’, which became a burden to Koreans and Japanese who owned property in Gyeongseong. Finally, during the operation of both city planning, Japanese imperialism showed “coloniality”. City planning it self became a brutal instrument to rule colonies. Chinese of Xinjng and Korean of Gyeongseong were expelled from their livelihood and moved to a more poor environment.
한국어
본 논문은 만주국의 국도선정과 관련한 사료분석을 시작으로 하여, 일본제국주의가 어떠한 배경에서 기존시가지를 식민지 행정도시로 재개편하는 방식이 아닌 새롭게 수도계획을 세웠는지에 대해서 접근해보고, 실제 도시계획상에서 어떠한 차이점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신경의 국도선정배경을 바탕으로 경성과의 비교를 진행하였고, 나머지 하나는 국도건설계획방안과 확정안을 통해 신경의 특징에 대해서살펴보고, 각 특징별로 경성의 도시계획과의 비교를 진행하였다. 駒井德三가 작성한 『대만주국건설록』에서는 장춘의 국도선정배경을 크게 정치적, 경제적, 지리적(교통적)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정치적으로는 기존세력권이상대적으로 멀리 위치한 점하고, 경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심양보다 지가가 저렴하다는 특징, 그리고 지리적(교통적)으로는 남만주철도의 종점이자, 북만주철도의 기점이며, 길림선과 길회선의 철도요충지라는 특징을 가진다. ‘신경 국도선정 배경’의 관점에서 경성을 분석해보면, 경성은 오히려 길림과 심양과 같이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도시였기 때문에 기존세력권의 영향이 컸고, 다른 도시에 비해높은 지가가 도시계획과 운영에 있어서 큰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새롭게 건설되는 만주국에 ‘새로운 수도계획’은 일본제국주의의 초기 식민지에서 기존의 수부를 중심으로 행정도시로 재개편하는 과정 속에서 토착민들의 반발과 저항 등의많은 시행착오의 경험이 반영된 결론으로 추정할 수 있다. 駒井德三가 설명한 교통적 측면에서는 신경과 경성은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본 ‘철도제국주의’에 의해 만주와 조선의 국가 행정과 경제 체계가 철도연선도시를 중심으로 재편성하면서, 행정의 기능을 가지는 도시들은 식민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철도요충지로 발전하였다. 만주국 국도건설계획의 특징을 중심으로 경성과 비교를 진행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분석되었다. 첫 번째, 신경이 “일본 기술과 자금으로 완성한” ‘만주식’도시계획이었다면, 경성은 ‘오스만화’를 기초로 한 동경시구개정의 계획수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 도시계획이라는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동양전통의 궁궐배치 원리라는 측면에서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만주국 집정부 혹은 조선총독부를 남향으로 배치하고 남쪽에 근대관청거리를 형성하는 모습은 유사하고, 공통적으로 도시의 주요 상업경제축은 기존시가지의 상업축을 철도역까지 연장하거나 개수하는 방법으로 재편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 만주국 설립이후, 조선, 만주, 대만에서는 철도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도시계획법령을 제정하고 시행하였는데, 군사적 목표 실현을 위해 도시와 철도 연계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신경과 경성에 시행되었던 지역제와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일본인주거지확보와 공업단지 조성의 목적이 철도교통망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재원조달의 방식에 있어서, 만주국의 국도건설국은 신경의 토지를매입하여, 개발 후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정부, 부동산업자, 개발업자 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여 도시계획부터 시행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업재원이 부족하였던 경성부는 시가지계획 시행에 있어서 수익자부담금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고자 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전시체제의 조건까지 더해져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일부만 완성되었다. 네 번째, 두 도시모두 시행과정에서 식민지도시계획의 이면이 드러났는데, 신경과 경성 도시계획자체가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중국인과 조선인 토착민들의 주거지를 철거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구역으로 개발하는 행태를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공통 전제에서 시작하여, ‘만주국 신경’과 ‘조선 경성’을 도시계획이라는 측면에서 비교를 시작하였다는데 의의를 두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에서는 두 도시 간의 유사한 도시계획의 항목별로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심도 있는 연구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목차
Ⅱ. ‘신경’국도선정 배경에서 바라본 경성
1. ‘신경’ 국도선정 배경
2. ‘신경’국도선정 배경에서 바라본 경성
Ⅲ. 신경 ‘국도건설계획’과 경성의 도시계획 비교
1. 신경 ‘국도건설계획’의 방안선정과정
2. 신경 ‘국도건설계획’과 경성의 도시계획 비교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