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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 ‘생명론’의 사상적 원천과 자장

원문정보

A source of thought and affected range of Yanagi muneyoshi’s Vitalism

서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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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Yanagi Muneyoshi is known as the founder of the Mingei(民芸) Movement. On the other hand, the fact that he accepted the Western Vitalism was not noted. In the 1910’s, when he he was involved in magazine , he became obsessed with spiritualism and life with strong disapproval of physics and mechanistic world-view. It can be found "The Problems of Life"(1913) and the subsequent William Blake study. As some studies have shown, his interest in life in the 1910’s develops Mingei movement later. However, it was almost impossible to draw attention to how the interest in Korean Art, which exists between the two sides, was linked to the preceding life. But intuition, accepted through Henri Bergson and William Blake, is a key method of his Korean Art. In this regard, it is essential to link the theory of life to Korean art. The theory of Korean art what it can be read the mind of others through the a work of art shows that a principled argument about his life and intuition is meeting with concrete history. Also, his Korean art was influenced by 3.1 sports. It means that his life discourse has shifted from abstract level to empirical living like Korean art and folk(Mingei) movement.

한국어

야나기 무네요시는 무엇보다 민예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반면 그가 서구 ‘생기론(vitalism)’의 적극적 수용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시라카바> 동인으로 활동했던 1910년대에 물리학과 기계론에 대한 강한 거부감 위에서 심령과 생명에 몰두했다. 그것은 1913년에 발표한 「생명의 문제」(1913)와 뒤이은 윌리엄 블레이크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생명에 대한 야나기의 관심이 후일 민예에 관한 구상에 이어진다는 논의는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조선예술에 대한 관심이 이전 시기의 생명론과 연결되는 문제는 그간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야나기가 앙리 베르그송과 윌리엄 블레이크를 통해 수용한 ‘직관’은 그의 조선예술에 관한 방법론의 핵심을 차지한다. 그런 점에서 생명론을 조선예술론과 결부시키는 작업은 불가결하다. 미술품에서 민족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는 야나기의 조선미술론은 생명과 직관에 관한 메타적 논의가 구체적인 역사와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조선예술론이 3.1운동의 충격 속에서 쓰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3.1운동은 그의 생명론을 ‘초경험적’ 이론에서 조선예술론과 민예운동과 같은 구체적 대상을 갖는 ‘경험적 생명(생활)’으로 전환(하강)시킨 결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

柳宗悦は民芸運動の創始者として知られている。一方、彼が欧米の生気論(vitalism)の積極的な受容者だったという事実はあまり注目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彼は<白樺>の同人として活動した時、物理学と機械論に対する強い抵抗を持ち、心霊と生命に没頭した。それは1913年に発表した󰡔生命の問題󰡕とその後のウィリアム・ブレイクに関する研究から確認できる。 この時期、生命に対する柳の関心が「民芸」に関する構想につながるという議論はすでに存在する。 ところがその間に存在する朝鮮芸術に対する関心がその以前の生命論とどのようにつながっているのかという問題については、これまでほとんど注目されなかった。 しかし、柳がアンリ・ベルグソンとウィリアム・ブレイクを通じて受け入れた「直観'」という概念は彼の朝鮮芸術に関する方法論の中核を占めている。その意味で生命論を朝鮮芸術論と連携させる作業は不可欠である。 美術品からそれを創造した民族の「心」を読み解くという方法論に依拠している柳の朝鮮芸術論は、生命と直観に関する以前のメタ的な論議が具体的な歴史と会う場面を表わしている。また、彼の朝鮮芸術論が「3.1運動」という事件の衝撃の中で書かれたという点を考えれば、「3.1運動」は彼の生命論を超越論的な理論から朝鮮芸術論と民芸運動のような経験的生命(生活)へと転換ないしは下降させた決定的契機といえる。

목차

<요지>
 Ⅰ. 머리말
 Ⅱ.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기론’ ― ‘일원적 이원론’
 Ⅲ. 1910년대 ‘생명’의 지식장
 Ⅳ. ‘생기론’의 행방 : ‘생명’에서 ‘생활’로
 Ⅴ.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저자정보

  • 서동주 Seo, Dongju.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조교수. 근현대일본문학과 사상.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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