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김천흥과 <조선무악>을 통한 국립국악원의 무용복원 연구

원문정보

A Study on Restore of Court Dance Performed in the National Gugak Center through the master Kim, Cheon-heung and <Joseon Muak>

박정경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his is an essay about restore of court dance by searching at activiies of Kim Cheon-heung, a great master of Korean traditional dance and music and a silent film made in the 1931. To the research, Jeongjae; traditional court dance performed by Kim and the restoration procedure are reviewed. Also the contents and utilization values of which offered appropriateness and confidence of Kim's Jeongjae project to audience.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core of the Jeongjae restoration was Kim Cheon-heung, not documents of Joseon Dynasty, record paintings; Uigwe[ 儀軌 ] and Holgi[ 笏記 ]. This is because Kim was existence figure who served as a successor of Jeongjae since late Joseon Dynasty containing modern court music institute, Yiwangjik Aakpu. has the existence of justification for the very reason that Kim is entitled to restore Jeongjae. The restoration of the dance is divided into three parts; first is steps to expand repertoire of Jeongjae and restore dancing, second is steps to restore each processes of court ritual, and last is steps to develop new creative dance drama by using Jeongjae. In the third case, historical documents, paintings and film such as are paalied as a materials of creation. Also, in the restoration process, it was suggested that the beginning of the restoration work was made through historical literature, such Uigwe[ 儀軌 ] and Holgi[ 笏記 ], but eventually completed by creation. There is a limit to the writing or painting of a series of movements with continuous movements. It is only possible to create a gap between the cracks in this discontinuity, and Kim used the dance he had learned through his lifetime as a tool for creativity. Now we need to concentrate more on the creative exploitation of dance with Kim's achievements. First, for the future development of dance, the importance of dance and cultural sharing of dance worlds is paramount. Second, the dance majors should be systematically educated by Jeongjae as well as in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Lastly, Jeongjae should be used as a free ingredient rather than as part of a rigid court culture. I expect to study in neighboring areas such as dance academia, classical music, aesthetics, and theater in the near future.

한국어

본고는 김천흥과 <조선무악>을 통하여 국립국악원이 정재를 복원한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본 글이 다. 이를 위해 김천흥이 이왕직아악부와 국립국악원에서 배우고 공연했던 정재의 내용을 재정리하고, 김천흥의 정재 복원 과정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학계 및 대중들에게 김천흥의 정재 전승과 복원에 대한 당위성과 신뢰를 제공한 1931년의 기록화 <조선무악>의 내용과 활용가치에 대해 고찰하다. 그 결과, 정재 복원에 중심에 있었던 것은 무보나 홀기 등의 문헌이나 <조선무악>과 같은 상이 아닌 ʻ김천흥ʼ이라는 사실로 귀결하다. 그는 정재를 꽃피웠던 조선후기와 근대 국립국악원 설립 이전 시기를 이어준 이왕직아악부에서 몸소 정재를 익히고 추었던 실존 인물이기 때문이다. <조선무악>은 김천흥이 정재를 전승하고 복원할 적임자라는 명분과 신뢰를 주는 근거로서의 존재 가치를 지닐 뿐, 실제 정재 복원에 향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았다. 정재의 복원 양상은 세 단계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정재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춤사위를 복원하는 단계로, 김천흥과 그 제자들에 의해 조선후기 및 이왕직아악부 정재일람표에 기록된 내용이 거의 모두 복원되었다. 두 번째는 정재가 연행되었던 조선조 궁중연례악, 혹은 회례연 등의 의식 절차를 복원하는 단계이며, 세 번째는 정재를 바탕으로 극적 내용이나 새로운 안무를 곁들여 창작 무용극으로 발전시키 는 단계로, 이 때 활용된 기재 중에는 의궤, 홀기와 같은 조선시대의 기록 외에 <조선무악>이 포함된다. 또한, 정재를 복원함에 있어서 그 토대는 사료와 도상자료 등 옛 문헌이 제공했지만 결국에는 창작으 로 완성되었다는 점을 제시하다. 연속적인 움직임을 지니는 정재를 장면 단위로 기록한 무보나 글로 설명한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불연속의 간극을 매우는 것은 창작일 수밖에 없으며, 김천흥은 이 창작의 도구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익혔던 정재와 여타의 춤사위를 활용했다. 궁중진연에서 직접 정재를 공연 한 경험으로 후학들에게 정재를 전수할 수 있었고, 기록화 <조선무악>은 김천흥의 복원 작업에 대한 신뢰를 더해주었다. 이제는 김천흥의 업적을 발판삼아 정재의 창조적 활용에 더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재의 미래지 향적 발전을 위해서는 첫째, 정재에 대한 무용계 및 문화계의 가치 공유가 우선이고, 둘째는 이를 바탕 으로 무용 전공자들은 물론 일반 초․중학생들에게 정재를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마지 막으로는 엄격한 궁중 문화 및 정재의 문턱을 허물고 다양한 창작 기저로 활용해야 한다. 향후 정재가 보유하고 있는 깊은 멋과 활용 가능성에 대해 무용학계와 국악, 미학, 연극 등 인접분야에서 함께 연구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국립국악원과 심소 김천흥의 예술 활동
 Ⅲ. 김천흥과 <조선무악>을 통한 국립국악원의 무용 복원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박정경 Park, Jeonggyeong.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5,7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