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1655년(孝宗 6), 德川幕府는 4대 將軍 家綱의 襲職을 視賀하는 통신사를 요청하였다. 조선은 淸나라를 견제하기 위하여 이에 응하였으나, 막부는 통신사를 초청하여 日光 東照宮에 致祭를 올리도록 하며, 將軍家의 권위 高揚와 지배력 강화에 이용하였다. 조선은 일본과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왜란으로 인한 舊怨과 중화문명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으로, 일본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從事官 南龍翼은, 일본을 中華를 어지럽힌 오랑캐에 비유하며, 일본을 기미(羈미)하는 國策을 중국의 오랑캐 敎化정책에 비유하였다. 통신사가 위험한 뱃길을 왕래하는 것은 臥薪嘗膽하는 것이지, 舊怨을 잊고 일본과 和親하기 위한 使臣이 아니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과 對馬烏를, 일본에 빌붙어 조선을 괴롭히는 곤란한 바다 괴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국제정세가 변하여, 일본을 보는 시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繁盛함을 보고 겉으로는 유교적인 시각으로 夷狄視하였으나, 현실과 내면의 갈등을 완곡하게 詩로 읊으며, 일본을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일본의 자연과 경제력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것은 사행의 성과였다. 그간의 교류로 日本見聞이 축적되어, 使行錄 중에서는 가장 자세한 일본연구인「聞見別綠」을 편찬하였으나,「聞見別緣」도 先行의 일본연구와「海東諸國記」의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자정보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