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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戶幕府의 帶刀統制와 帶刀政策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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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trol of Taito ( sword ) and the change of Taito policy in Edo Bakufu

구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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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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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기는 에도 막부의 정책이 무단통치에서 문치정치로 전환하였던 시기였다. 이러한 정치의 전환과 궤도를 같이하여 막부의 대도통제 정책도 질적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막부는 17세기 전기에는 大刀·大脇指의 단속에 초점을 맞추어 대도를 통제하였다. 그것은 大刀·大脇指가 당시의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였던「가부키모노」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부키모노」의 탄압과 관련하여 통제하였던 것이다. 17세기 중기에 이르면 사회질서가 안정되었다. 또 막부의 지속적인 탄압의 결과「가부키모노」는 점차로 소멸하게 되었고, 大刀 ·大脇指로 상징되던 그들의 풍속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자 막부의 대도통제 정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막부의 대도통제 정책은 닌 문제와도 깊은 관련성이 있었다. 17세기 중기에 이르면 로닌은 더 이상 막부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나, 그들은 죠닌 사회의 일원이 되어서도 계속 대도를 하고 있었다 17세기 후기에 이르러 신분제 사회가 확립되면서 막부는 이들 帶刀人을 파악할 필요성에 직면하였다. 17세기 중기는 무가사회의 질적으로 변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年期奉公人이 일반적으로 성립되었고, 그 수도 증가하였다. 그들의 증가는 도시의 대도 인구의 증가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신분적으로는 비록 서민이었으나 무가사회의 일원이 되면 그 직분에 따라서 帶刃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일시적으로 실업한 자들도 일상적으로 대도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막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들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대도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였다. 막부가 17세기 전기의 치안 유지에 중점을 둔 정책에서 신분질서 유지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전환하였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정보

  • 구태훈 성균관대 부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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