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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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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오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란과 관련된 군기작품을 많이 생산하였다. 임진왜란에 관한 군기작품도 이런 맥락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초기의 전란참가자들의 군기는 차츰 주자학자들에 의해 종합화되고, 대의명분에 따른 전쟁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17세기 말『징비록』이 일본에 전해지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측 내용이 비로소 일본 군기작품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조선군기대전』은『징비록』의 내용을 받아들인 최초의 작품이다. 『조선군기대전』에는 주자학의 명분론을 일본의 입장에서 이해한 `일본의식`을 바탕으로 해서『징비록』의 내용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천황을 정점에 두고, 침략 명분이 새로이 만들어 붙여진다. 침략전쟁은 진구(神功)황후의 삼한정벌설과 조선의 무례함에 대한 응징으로 옹호된다. 뿐만 아니라『징비록』의 자기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서술은 더욱 과장되어 나타난다. 『조선군기대전』에는『징비록』의 사실내용은 대부분 받아들여졌으나, 유교적 근본이념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유교적 평화주의에 익숙해있던 조선이 일본의 무도한 침략을 맞이하여 각지에서 목숨을 내걸고 일본군에 대항한 의병들의 활동이나, 전쟁 내내 민심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던 유교적 민본사상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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