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The Acceptance and Exclusion of Systems and Policies during the Koryo Dynasty Period
고려시기 제도와 정책의 수용과 배제 – 성종대 화풍과 토풍의 공존과 갈등을 중심으로 -
초록
영어
The political power groups including Choi Seung Ro(崔承老) that led the initial stage of King Seungjong(成宗) pushed forward a reformation of system which aimed for a harmonious moral culture. It was modelled on the system of Song(宋) Dynasty to establishment of the Confucian system of Koyro Dynasty. As a result, the Buddhism events such as Yeondeunghoe(燃燈會), Palgwanhoe(八關會), and Seonrang(仙郞) and the folksy, traditional beliefs which follow God’s wish were abolished. Accordingly, another power group including Seo Hee(徐熙) and Lee Ji Baek(李知白) who respected the value of harmonious, folksy events strongly resisted the reformation. The new political group which apprised the traditional beliefs involving a folksy spirit took the initiative after the first attack of Kitan(契丹) and they restored the abolished folksy events. After that, such folksy events as Yeondeunghoe, Palgwanhoe, and Seonrang had been reestablished as most popular ones in the area of Buddhism and traditional beliefs.
한국어
成宗代에 있었던 華風과 土風의 공존과 갈등을 소재로 삼아, 「고려시기 제도와 정책의 수용과 배제」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崔承老의 時務策이 성종 즉위 이후 정치 개혁의 준거로 받아들여지면서, 성종대에는 제도의 개혁 기 준으로서 정신 문화는 전적으로 華風에 입각하여 수용하였고, 물질 문명은 화풍과 土風을 동시에 감안 해서 수용하는 기준을 채택하여 정책을 추진했다. 화풍에 의한 정신 문화의 제도적 개혁은 宋에서 입 수한 서책류 등의 유교 典範을 기준으로 삼아, 宗廟 社稷 圓丘 籍田 등 국가 왕실 의례를 중심으로 추진했다. 유교적 체제정비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으나, 단기간에 졸속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적잖이 드러났다. 그리고 불교 행사와 전통적 신앙인 燃燈會, 八關會, 仙郞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太祖는 訓要10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 행사를 폐지하지 말고, 계속 거행해 줄 것을 후대 국왕에게 간절하게 당부했다. 최승로도 연등회와 팔관회 행사에서 소모되는 막대한 비용과 제도적 폐단의 시정 을 지적했을 뿐, 두 행사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연등회와 팔관회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지 않았던 최승로와 연등회, 팔관회의 지속적 거행을 주장한 태조의 공통 인식은 당시 화풍과 토풍이 공 존할 수 있는 정책적 공간이라고 여겨진다. 당시 송으로부터 막대한 분량의 蜀版 大藏經을 도입한 것도 당시 유교적 체제정비가 불교를 전면 배척하는 형태의 排佛論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유 력한 근거가 된다. 이런 측면들은 당시 華風과 土風이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적 공간이 존재했 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李知白의 상소문을 보면, 거란의 1차 침공 당시에 선랑은 물론이거니와 연등회와 팔관회가 이미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지백의 상소문은 당시 종교 신앙 등 정신 문화 방면의 제 도 개혁이 송에서 수입된 유교 전범을 바탕으로, 유교의 절대적 우위에 입각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었 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성종대의 거란 침입 이전의 시기에 정국을 주도하던 崔承老 등의 집권세력 은 송을 모델로 삼은 유교적 체제정비를 이루기 위해, 이른바 華風적 정신 문화를 지향한 제도 개혁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 연등회, 팔관회의 불교 행사나 神明을 받드는 土風적 전통 신앙이 폐지되었고, 따 라서 토풍적 행사의 가치를 존중하는 徐熙, 李知白 등의 세력은 이에 강력히 대립하였던 것이다. 이지백 등과 같은 토풍적 정신을 담은 종교 신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정치 세력이 거란의 1차 침공 이후에 정국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면서, 팔관회 등 유교 우위의 화풍적 정책을 추진했던 세력이 그간 폐기했던 토풍적 행사를 복구했다. 이후 고려 사회에서 팔관회, 연등회, 선랑 등의 행사는 불교와 전통 신앙 방면에서 가장 빈번하게 거행되는 국가의 중요 행사로 다시 자리잡았다.
목차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