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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東北地方における農民と満洲移民 - 宮城県の地主·小作人を中心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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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ular Imperialism and Manchurian Emigration : Tōhoku Landlords, Tenant Farmers, and “Village-splitting” Plans

일본 도후쿠(東北)지방 농민과 만주이민 : 미야기현의 지주ㆍ소작인을 중심으로

Christopher Cra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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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emigration of Japanese farmers to Manchuria in the 1930s and 1940s is often taken as a sign of popular support for empire and fascism. Presented with new opportunities by the conquest of Manchuria, farmers saw a means of escaping their economic distress and agricultural villages a way to jettison their excess populations and eliminate strains on their limited resources. While the attitudes of those involved towards Japan’s imperial expansion may have varied from tacit endorsement to enthusiastic support, these farmers and their villages were participants in and agents of empire. The case of the Miyagi village of Nangō, birthplace of the mass Manchurian emigration plans that were adopted as national policy, raises problems with this interpretation and suggests new ways of understanding the links between popular imperialism and Manchurian emigration. Nangō farmers faced the widespread problems of high rents, overpopulation, and high tenancy rates, and formulated plans to send half of its population to Manchuria to found a sister village in response. This was not, however, a simple attempt to exploit imperial conquests. In Nangō,  Manchurian immigration was a threat levelled by tenant farmers at the landlords who controlled village administration. The appeals to empire bought the support of the central government, which helped break the landlord monopoly on power, after which the villagers abandoned their plans for Manchuria.

한국어

제국일본과 ‘만주국’을 논함에 있어서 제국주의 · 파시즘과 일본 일반민중과의 깊은 관계가 지적되곤 한다. 그러한 해석의 하나로서 일반농민이 만주농업이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을 들곤 한다. 경제적 불황을 배경으로 농민은 제국의 확장이라는 기회를 잡아서 새로운 삶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것이며, 만주로 이민한 이들 농민들은 제국주의자이거나 제국을 묵인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쪽이든 국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자들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만주농업이민과 일본 농촌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면, 만주로 건너간 농민이 제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해석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특히 후에 국책이 된 만주분촌이민계획을 처음 발안한 미야기현 난고촌(南郷村) 사례는 민간 차원에서 전개된 제국주의와 만주농민이민문제와 관련해서 선행연구와는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1930년대 난고촌농민은 일본의 다른 농민과 같은 문제 즉 높은 소작료와 소작율, 경지부족, 인구과잉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난고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마을을 두 개로나누여 과잉인구를 만주에 이주시켜 자매촌을 만들고, 이민 간 사람들이 남긴 경작지를 마을에 남은 사람들에게 할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인 실시되자, 소작인이 줄어들어서 경작지 수요도 감소해서 마을회(村會)와 행정을 지배하고 있던 대지주는 이주 계획을 저지하고, 이를 촌시(村是) 즉 마을기본정책으로 해야 한다는 소작인의 요구를무시하였다. 당시 중앙관료와 군인은 만주국 방위작전을 위해서 재향군인을 대상으로 만주농업이민을 촉진하고 있었으나, 이민자 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센다이에 주둔하고 있던 제4 연대장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를 통해 난고촌의 만주분촌이민계획은 중앙관료에게 알려졌고, 그 결과 숨통이 막혀있던 만주이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관료의 기대와 의도에도 불구하고 난고촌을 둘러싼 계획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분촌을 추진한 세력은 단순히 농민의 이익을 위해 국책에 동조해서 만주 땅을 착취하려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난고촌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소작농들은마을 지배를 독점하고 있던 소수의 지주에 대해 분촌계획을 경제적·정치적인 위협수단으로사용했던 것이다. 단순히 소작료를 낮추는 것뿐 아니라, 분촌계획에 대한 중앙관료의 승인을 얻어냄으로서 마을 행정을 관장하는 지주층이 분촌계획에 반대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관료와 마을주민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분촌이민계획은 지주의 지배를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었기에, 지주들이 국책에 협력을 하게되자, 난고촌 소작인은 굳이 분촌계획에 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어져서 이민에 동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어

帝国日本における「満洲国」については、しばしば帝国主義・ファシズムと日本の一般民 衆との深い関係が指摘される。こうした解釈の一つとして、一般の農民が満州農業移民に 対して熱心に参加をしていたことが主張されている。経済不況を背景に、農民は帝国の拡 張という機会をとらえ、新生活を送るために渡満したのであり、移民した農民は帝国主義 者あるいは帝国を黙認する人であったが、どちらにせよ国策に積極的に参加したものでも あったというのである。 しかしながら、満洲農業移民と日本の農村を具体的に検討すると、渡満した農民が帝国 の発展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という解釈に対して疑問が生じる。特に、のちに国策と なった満洲州分村移民計画を最初に案出した宮城県南郷村の事例は、民間レベルで展開さ れた帝国主義と満州農業移民に関して、先行研究とは異なる解釈を示唆するものである。 1930年代に、南郷村の農民は日本中の農民と同様の問題-高い小作料や小作率、耕地不 足、過剰人口等-に直面していた。南郷村では、そうした諸問題の対策として、村民が村 の住民を二分し、過剰人口を満州に送り出して姉妹村を創立し、渡満した村民が残した耕 地を村に残っている人口に割り当てるという計画を立てた。しかし、そうした計画が実施 されると、小作人の人口が減少して耕地への需要が減少するために、村会や村の行政を支 配していた大地主はその計画を阻止し、村是とせよという小作人の要求を無視した。その 当時、中央官僚や軍人は「満洲国」の防衛作戦として、在郷軍人を対象に満州農業移民を促 進していたが、移民の人数は期待されたものには及ばなかった。仙台に駐留していた石原 莞爾を通じて、南郷村の満州分村移民計画は中央官僚に知られるようになり、それまでの 満州移民の行き詰まりを解決するための手段として、国策に組み込まれた。 しかし、帝国の官僚の期待や意図にもかかわらず、南郷村における計画の形成過程をみ ると、分村を推進した勢力は単なる農民の利益のために国策に同調して満洲の地を搾取し ようとしていたわけでは、必ずしもなか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る。南郷村の人口の過半を 占めた小作人は、村の支配を独占していた少数者の地主に対して、分村計画を経済・政治 的な威嚇として使った。小作料を下げることだけではなく、計画に中央官僚の承認を得る ことで、村の行政を担う地主層に計画に対する抵抗を諦めさせて、官僚や村民に協力せざ るを得ない状況を作ろうとしたのであった。実際に南郷村から移民を希望した者は非常に少なく、姉妹村を創立する人数まで及ばなかった。最初から分村移民計画は地主の支配を 崩すためのもので、地主達が国策に協力を強いられるようになりさえすれば、南郷村の小 作人は分村計画に関する関心を失い、移民には同調しなかったのであった。

목차

はじめに
 第1章 農村と帝國
 第2章 滿洲移民
 第3章 南鄕分材移民計劃の展開過程
 第4章 滿洲分村移民の國策化
 第5章 分村計劃の失敗と實際の效果
 おわりに
 reference
 abstract
 Abstract
 abstract

저자정보

  • Christopher Craig 東北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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