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Investigation into the Period when yijibieji (義記別記) was Written
『대승기신론의기별기』의 성립에 대한 재검토
초록
영어
This paper aims to explore a new perspective on Fazang’s yijibieji (起信 別記), which has been analysed questioned since the Edo period. Yijibieji was first recorded in Fazangheshangzhuan (法藏和尙傳), which was written by Choichiweon (崔致遠) in 904, and was revised in Enochoroku (圓超錄), the first Japanese list, in 914. However, yijibieji was first quoted in the Seokhwaeomkyobungiweontongcho (釋華嚴敎分記圓通鈔) of kyunyo (均 如) who was active in the early Goryeo period. Zixuan (子璿), of China, does not use quotations, but it is almost certain that he refers to yijibieji. And Junko (順高), of the Japanese Kamakura period, wrote a commentary on Fazang’s yijibieji. Thus, it can be seen that yijibieji has been circulated and quoted in East Asia since the 10th century. In modern times, Mochizukishiko (望月信亨) published a study denying that yijibieji is a work of Fazang. However, later researchers tend to regard Fazang to be the author of yijibieji. In this paper, I investigate the authorship of yijibieji by attempting to solving these problems through analy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various sentences. Tanguang (曇曠), a Fashiang scholar from Dunhuang, wrote Chishinrunguangshu around 763. Zongmi, a Huayen scholar of the Tang period, wrote yuanjuejingtashu (圓覺經大疏) around 823. And Choichiweon wrote Fazangheshangzhuan in 904. I therefore presume that yijibieji was written during this same period.
한국어
본고는 에도시대 이후 저자의 진위 문제가 제기되었던 법장의 <<大乘起信論義記別記>>를 새로운 관점에서 논증하고자 작성되었다. <<別記>>는 904년에 지은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처음 보이며, 일본 목록에서는914년의 <<圓超錄>>에 처음 보인다. 한편 <<別記>>는 均如(923-973)의 <<釋華嚴敎分記圓通鈔>>에서 처음으로 문헌명으로 인용된다. 중국의 자선(子璿,965-1038)도 인용명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別記>>를 읽었다는 것은 밝혀졌다. 그리고 일본의 준코(順高)가 법장의 <<起信論別記聽集記>>를 저술하고 있는 점을 볼때, <<別記>>가 10세기 이후 동아시아에 유통되고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別記>>는 <<기신론>>에 관한 다른 저술들이 수문해석을 견지하는 것과 달리 총 35개의 장명으로 구성되어 주석된다. <<別記>>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과문과 과문의 내용이 법장의 <<삼보장>> 「법신장」, 「현의장」과 거의 일치하는 곳이 발견될 정도로 법장을 가장 많이 의용하지만, <<기신론>>의 문장과는 관련 없는 장명이포함되어 있고, 법장이 <<의기>>를 저술한 단계에서는 관심이 없었던 장의 명칭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義記>>와 <<別記>>의 사상적 연속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한편, 曇曠의 <<起信論廣釋>>과도 과문 및 과문의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검토 결과 <<別記 >>쪽이 <<기신론광석>>보다는 정리된 문장을 보여주 는데, 간략화정도를통해본다면 <<廣釋>>→<<別記>>의 방향을 상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 <<別記>>는담광이 763년 저술한 <<略述>>의 내용과도 관련성이 보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宗密의 <<圓覺經大疏>>를 원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본고에서는 <<別記>>가 曇曠의 <<廣釋>> 및 <<略述>>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종밀이 <<圓覺經大疏>>를 저술하는 823년 이후,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이 저술되는 904년 이전에 법장에게 가탁된 문헌임을 추정하고자 한다.
목차
I. 문제의 제기
II. 장의 명칭과 『기신론』
III. 『別記』의 성립문제와 진위문제
1. 성립문제
2. 진위문제
I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