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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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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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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aims to identify Joseon toys' cultural values by reviewing how Joseon acculturated and accepted the 'folk characteristic' given in Imperial Japan's culture industry. Especially, the folk toys', the target of this study means Korean traditional toys showing the folk color and reflecting a local area's folk life or costumes. The campaign of 'Folk Toys Promotion' in such an atmosphere was one of main activities carried out by the Office of Commerce & Industry Encouragement, an organization under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he Office of Commerce & Industry Encouragement took the responsible collecting, selling and advertising various goods from all regions of Joseon, and especially set specific plans for the campaign of 'Folk Toys Promotion' with setting the improvement of local products in Joseon as the office's primary task and actively carried out job educations in each school and encouraged each home to earn more money through sidelines. Looking at some articles about Joseon folk toys written at that time, they referred the 'folk toys' as Joseon's unique toys. To the Joseon people selling Joseon toys to some western and Japanese purchasers, 'Joseonness' might be an urgent problem to be understood. Such 'Joseonness' might be realized through the pursuit for uniqueness and the 'pure Joseon clothes' at the same time.

한국어

본고는 식민지 조선의 ‘향토완구’를 통해 조선 재래의 완구와 신완(新玩)을 비교 분석하고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에 요구되었던 ‘그로테스크의 미’와 조선인이 구현해 내려한 ‘순 조선옷’의 길항관계를 통해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의 생산, 유통, 소비를 다각적으로 검토하였다. 조선을 제국 일본의 서부지역으로 편입시켜 ‘신완’을 조선 완구의 개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향토완구’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식민지였던 조선의 ‘향토’는 ‘지방색’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서구 완구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수집 취미를 갖는 이들이 ‘향토’를 적극적으로 구입하게 된 것이 조선의 ‘향토’가 유통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방적 특색이 농후한 향토완구’는 생산과 유통이 연계되어 조선의 ‘향토완구’에 ‘엑조티시즘’의 가치를 부여해 간다. 이러한 ‘엑조티시즘’은 ‘그로테스크의 미’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주로 ‘종교적이고 기원적’인 조선의 ‘향토완구’를 유통하고 그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미’를 찾아낸데 그 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 완구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완구관은 일본의 시각을 그대로 수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성품’을 완구로 보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볼 때 완구산업화가 늦은 식민지조선의 완구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나카 우메키치의 목록집을 통해 조선이 완구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외래품의 이입을 방지하고, 농촌의 부업으로서 효과를 얻기 위해 개시한 ‘향토완구’ 장려운동의 배경에는 재조일본인 사이에서 유통되던 ‘상품’으로서의 ‘향토완구’와 미주로의 인형수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공장려관이라는 관주도의 측면이 있지만 ‘향토완구’ 장려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다양한 지역과 학교에서 ‘향토완구’의 제조와 판매를 실시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에서의 ‘향토완구’는 이미 ‘상품’으로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향토완구’ 장려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제국의 시선 속에서 선택된 ‘향토완구’를 양산해내게 되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인 스스로가 어떠한 것이 조선의 ‘향토완구’인지 재료와 모양에 대한 논의와 고민도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ABSTRACT〉
 1. 들어가며
 2.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의 출현
 3. 조선의 ‘향토완구’에 요구된 그로테스크
 4. 식민지조선 ‘향토완구’의 유통과 장려운동
 5. 마치며
 참고문헌(Reference)
 〈要旨〉

저자정보

  • 권희주 Kwon Hee-ju.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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