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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撰姓氏錄』의 기초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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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Study on 『ShinsenShojiroku』

『신찬성씨록』의 기초적 연구

서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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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Kanmucho was a period when the imperial line changed from Tenmu to Tenji and Kanmu-Tennno’s thoughts of the imperial line showed strongly. The reduction of the scope of relatives of the imperial family on Kanmucho was promoted by excluding those who have obtained the imperial name of Tenji or Tenmu through sisei. In addition, Kanmu-Tennno let relatives of the imperial family participate in politics and support the Tennno’s authority by commissioning sinnnos. In the period of Saga-Tennno, a surname of MinamotonoAsomi was bestowed to an imperial prince who was one year old, and let sinnnos, who have lost the right of succession to the throne, be gentlemen ushers through sisei and play a role in strengthening the Tennno’s authority. Therefore, there was a reason that, though 『ShinsenShojiroku』 was primarily completed in the year of Konin 5, it was again published in the year of Konin 6 in order to arrange the records on the Tennno’s sisei. Next, the basic system of 『ShinsenShojiroku』 is regarded to have been composed by the form of 「santa」i and 「sanrai」.

한국어

『신찬성씨록』(이하 『성씨록』이라 약칭)이 편찬된 간무조(桓武朝)는 덴무계(天武系)에서 덴지계(天智系)로 황통이 변화된 시기였다. 그래서 간무천황의 황통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조치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특히 간무조 전반기는 황친질서의 개편과 덴무, 덴지계 황친에 대한 ‘賜姓’을 통해 간무 직계 중심의 황친체제를 구축하였고, 후반기는 이러한 질서 위에 ‘親 王任官’책을 통해 천황권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황친을 대상으로 한 사성과 임관 정책은 사가조(嵯峨朝)에 계승되어 한층 진전을 보았다. 따라서 홍인 5년에 완성을 본 󰡔성씨록󰡕(1차) 이 미나모토노아손(源朝臣) 사성과 좌경 관부 등의 일련의 작업을 마친 뒤 『성씨록』의 좌경황별조의 필두에 미나모토노아손 등을 게재하였다. 보완된 『성씨록』(2차)에 다시 상표문을붙여 홍인 6년에 상주하였다. 그리고 각 씨가 제출한 본계를 공인하는 방식은 古記와 本宗 氏 本系와의 대조라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 두 가지 방법에 의거해 국가가 본계장을 제출한 씨족의 本枝 관계를 인정한 표지가 「三禮」이다. 또 어떤 씨족과 「同祖」 관계를 맺은 씨족인지, 어떤 始祖나 別祖를 둔 씨족인지가 정해지면 皇別, 神別, 諸蕃이라는 「三體」로 각씨족의 출신을 분류하여 『성씨록』에 게재하였다. 이러한 『성씨록』의 서술 체제는 내적으로는 씨족의 계보를 공인하는 역할과 황별을 중시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고, 외적으로는 고대의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지역을 모두 제번이라 규정하여, 황별, 신별 아래에 부속시켜천황 중심, 일본 중심의 관념을 체현하려 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어

『新撰姓氏錄』の編纂された桓武朝は天武系から天智系への皇統の變化期である。桓武 朝の前半期は天武․天智系の皇親に對する‘賜姓’を通じて桓武直系中心の皇親體制を築き、 後半期は‘親王任官’政策を基づいて天皇權を强化している。このような皇親に対する賜姓と任 官は嵯峨朝へ続いた。よって、『新撰姓氏錄』の完成された弘仁5年は、嵯峨天皇が1世皇子 に源朝臣の賜姓と左京に編貫などの作業が終わってから『新撰姓氏錄』の左京の皇別條に記 載することになった。そして、補完する『新撰姓氏錄』に上表文をつき、弘仁6年再上表された。 また、『新撰姓氏錄』は提出する本系を公認するために古記と本宗氏の本系との對照という原則 を適用している。この二つの方法は國家の各氏にたいする程度認定で、「三禮」で表記してい る。そのうえ、各氏は「同祖」関係、始祖、別祖が誰なのかにによって出自が決まり、皇別․ 神別․諸蕃という「三體」で分けて『新撰姓氏錄』に入錄するようになった。また、『新撰姓氏錄』 は皇別がらはじまっているし、諸蕃は皇別․神別の下に付屬したりして、天皇中心․日本中心 觀念を現すように構成された系譜書である。

목차

I. 머리말
 II. 皇親賜姓을 통해 본 再上表
 III. 씨족 계보의 公認과 서술 체제
 IV. 맺음말
 reference
 abstract

저자정보

  • 서보경 Bo-kyung, SEO. 부경대 해양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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