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구가 가쓰난(陸羯南)의 균세(均勢) 담론에서의 반(反)국가이성

원문정보

Counter-reason of State in Kuga Katsunan’s discourses on Kinsei (Balance of Power)

최정훈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examines the way in which Kuga Katsunan 陸羯南 (1857-1907) used the notion of Kinsei 均勢 (Balance of Power) to legitimize the exertion of state power. During the Korean Reformation in 1895-6 directly after the Triple Intervention, his Kinsei meant stability resulted from the righteous deeds and benevolence. When the partition of China was in progress, Kinsei was used to refer to the pretext that was assumed to disguise expansionism of great powers on the one hand, and the desirable future condition in China that could be realized through political reform and its consequent state of independence on the other. Katsunan's discourses on Kinsei imply that, even after the victory in the First Sino-Japanese War, Japan still held the identity of relatively inferior state, which had to appeal to the normative arguments. However, the normative meaning of Kinsei was weakened after the First Anglo-Japanese Alliance, thereby giving way to its value-free meaning of distribution of power. The new manner in which Katsunan used Kinsei without any normative concerns corresponded to the exalted position of Japan. The decline of the normative aspect of Kinsei meant Katsunan's transition from Counter-reason of State to Reason of State within the writings intended to legitimize the exertion of state power.

한국어

이 글에서는 메이지 시대 사상가 구가 가쓰난(陸羯南, 1857-1907)의 균세(均勢, 세력균형) 사유를 중심으로 국가의 권력 행사를 뒷받침하는 논의에 대하여 검토한다. 그의 균세는 삼국간섭 직후 조선 개혁기에는 의협(義俠)과 인(仁)이 실현된 안정의 상태를 가리켰다. 열강의 중국 분할기에 균세는 한편으로는 대국의 팽창주의를 수식하는 명분으로, 한편으로는 중국의 개혁과 자립에 의해 달성된 안정 및 초보적 평화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의 균세 논의는 일본이 청일전쟁 이후에도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규범적 논변을 동원해야 하는 상대적 소국의 장소성(場所性)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일동맹 체결 이후 가쓰난이 균세에 부여한 규범적 의미는 약화되고, 균세는 일본의 능력에 따라 가변적인 힘의 분포라는 가치중립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규범과 무관계한 균세 개념의 사용은 러시아에 대적할 만한 일본의 국제적 부상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균세의 규범성의 탈락은 가쓰난 사상에서 권력 행사의 정당화 논리가 반(反)국가이성에서 국가이성으로 전환하였음을 의미한다.

일본어

本論文は、明治時代の思想家である陸羯南(1857-1907)が均勢(勢力均衡)に就いて展開した議論を手掛りとして、国家の権力行使を裏付けた議論を検討したものである。三国干渉の直後、朝鮮の改革期に、羯南の均勢は、義俠と仁が実現された安定を示す概念であった。列強による中国分割時代、均勢は、大国の膨張主義を修飾する為の名分を意味する一方、中国の改革と自立によって成されている安定及び初歩的平和を意味した。このような均勢の言説は、日本が日清戦争以後にも、ロシアを牽制する為に規範的論弁を以って訴えなければならない程、比較的小国の場所性を持っ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しかし、日英同盟の締結以来、羯南が均勢に付与した規範的意味は弱まり、均勢は日本の能力に伴う可変的な力の分布という価値中立的な意味で使われ始めた。均勢が規範とは無関係に用いられたことは、ロシアに匹敵する日本の国際的地位の高揚に照応するものであった。均勢の規範性の脱落は、羯南思想において権力行使を正當化する論弁が、反国家理性から国家理性に転換したことを示している。

목차

<요지>
 Ⅰ. 머리말
 Ⅱ. 청일전쟁과 의협의 균세
 Ⅲ. 중국의 분할과 균세의 명실(名實)
 Ⅳ. 보전의 균세에서 공동점령의 균세로
 Ⅴ. 영일동맹과 가치중립의 균세
 Ⅵ. 맺음말: 국가는 고유한 행위의 논리를 가지는가?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저자정보

  • 최정훈 崔正訓. 공군사관학교 군사학과 강사. 일본근대사상사 전공.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7,6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