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조선 道學政治史에서의 思庵 朴淳의 위상 — ‘世道’와 ‘淸議’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Status of Saam Park Sun in History of Joseon Dàoxué Politics - Focusing on 'shìdào' and 'qīngyì'

조선 도학정치사에서의 사암 박순의 위상 — ‘세도’와 ‘청의’를 중심으로 —

崔英成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Saam Park Sun(1523-1589) holds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history of 16th century dàoxué politics. Starting from King Seonjo's accession in 1567, he took a lead in changing the former Politics by Hoonchuck(勳戚政治) to dàoxué politics. He served a prime minister alone for 14 years. Following philosophy of dàoxué politics that Jo Gwang-jo(趙光祖, 1482-1519) had advocated a generation earlier, he sought reformative politics by rising elites. He pursued ideal politics of dàoxué in which principles and public opinion agreed with each other and to realize it, he was in the forefront of correcting ‘shìdào(世道)’ and improving ‘qīngyì(淸議).’ It is why dàoxué politics is called shìdào politics(世道政治). He emphasized 'old manners(古禮)' as standard to criticize wrong reality and to realize ideals. The 'old' in his mind was ideals, principles and traditions. The most meaningful reform was to go back to spirit of 'old.' It is why he put stress on and stuck to practice of 'old manners' in national liturgy.

한국어

사암 박순(1523~1589)은 16세기 도학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선조가 즉위한 뒤 14년간이나 재상을 지내면서, 그 이전의 훈척정치(勳戚政治)를 도학정치로 바꾸는 데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전 시기의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부르짖은 도학정치의 이념을 계승하여 신진 사류(士類)에 의한 개혁정치를 추구하였다. 원칙과 여론이 일치되는 도학적 이상정치를 추구하였고, 이것의 실현을 위해 ‘세도(世道)’를 바로잡고 ‘청의(淸議)’를 신장하는 데 앞장섰다. 도학정치를 세도정치(世道政治)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그는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실현하는 준거(準據)로 ‘고례(古禮)’를 중시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고’는 단순한 시간상의 되돌림이 아니었다. 이상이자 원리이며 전통이었다. 그는 ‘고’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개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국가의 전례(典禮)에서 ‘고례’의 실천을 강조하며 이것을 관철시키려고 애썼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Ⅱ. 박순의 出身및 정치적 性向
 Ⅲ. 세도정치 定礎者로서의 위상
 Ⅳ. 世道와 淸議로 일관한 정치역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崔英成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6,4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