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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 일간지 『京城新報』와 『京城日報』에 수록된 20세기 초 조선 공연예술 기사 분석 -1908년~1915년 기사를 중심으로-

원문정보

Analysis of Articles on the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Early 20th Century Revealed in Japanese Daily Papers, the Gyeongseong sinbo and the Gyeongseong ilbo: Focusing on the Relevant Articles from 1908 to 1915

일문 일간지 『경성신보』와 『경성일보』에 수록된 20세기 초 조선 공연예술 기사 분석 -1908년~1915년 기사를 중심으로-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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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explores the aspects of and the Japanese perspectives on the traditional Korean performing arts in early twentieth century by analysing the articles on the performances in the Japanese media, the Gyeongseong sinbo (1908~1912) and the Gyeongseong ilbo (1911~1915). The articles on the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takes less than one eighth of the total articles on performing arts. Most of the articles are about those by female entertainers (gisaeng), which are also related to the Japanese music and dance or the occasions for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his reveals the report policies of the Japanese daily papers, which did not view the Korean music and dance in aspects of its artistry, diversity, and cultural value but covered them to promote the policies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lthough the most of the repertories performed in the variety theater (Yeonyegwan) of the Joseon Industrial Exhibition, organized in commemoration of the Japanese 5th ruling year over Korea, featured the court dance, Jeongjae, and the folk dance of Korea, they also included Japanese music performances by Korean female entertainers as well as “Sijeong onyeon ginyeom Seongtaengmu”, which was produced in commemoration of the Japanese 5th ruling year over Korea. In many cases, the Gyeongseong ilbo had inaccurate reports on the titles of the associations of the female entertainers and the number of the dancers in the program. The Japanese professional dancers views the Korean music and dance as a criterion for the Japanese music and dance, presenting a sense of incompatibility on one hand, and finding it the distinctiveness of the Korean performing arts, which has some things in common with theirs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lantern procession for the first birthday celebration of the emperor of Japan since the forcible occupation of Korea, which seemingly includes the processional music band of the Royal Conservatory of the Yi Household. It is also found that the Korean drama was performed along with the Japanese drama with content of allegiance in the garden party. The procedures of the semiannual services in honor of Confucius (Seokjeonje) in 1915 is the same as those of the existing ones except for ilmu, the lined dance, which consists of six lines, not eight lines as in the existing ones. The Imperial Edict on Education is delivered in the lecture following the services, which adopts “Review the Old and Learn the New” with new interpretation for the topic in order to justify Japan's domination over Korea. This presents that the Seokjeonje rituals were exploited on publicity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o promote its policy of Korea's assimilation with Japan.

한국어

이 글에서는 『경성신보』(1908~1912)와 『경성일보』(1911~1915)의 기사를 분석하여, 20세기 초 일본 매체에 나타난 조선 공연예술의 모습을 파악하고 일본인의 시각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경성신보』의 조선 공연예술 관련 기사는 전체 공연예술 기사의 2.15%, 『경성일보』의 조선 공연예술 기사는 전체 기사의 13.5%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이 기생의 악무에 관한 것이며 일본․일본악무․총독부 행사 등과 연관된 내용이다. 1915년에 개최된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의 연예관 상설공연 레퍼토리는 대부분 정재와 민속춤이었지만,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지 5년이 되는 해에 창작한 <시정오년기념성택무>도 있었다. 이 춤에는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일선동화를 촉진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연예관 공연에는 기생의 일본음악 연주도 포함되었다. 『경성일보』는 연예관 공연 프로그램에 기생조합의 명칭이나 무인 수를 부정확하게 게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무용전문가는 조선의 악무를 일본 악무의 잣대로 보고 위화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조선예술의 특징이라 하고 양국 무용에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인의 시각에는 무용을 통하여 동아시아예술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찾으려는 측면이 반영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 이후 첫 번째 천황 탄생일(천장절) 기념행사로 열린 제등 행렬에는 일본의 육군군악대 외에 이왕직아악대의 취고수로 보이는 악대가 참가했고, 원유회에서는 천황에 대한 충성의 의미를 담은 일본극과 함께 조선극이 연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1915년의 석전제 절차는 현행과 같았지만 일무는 현행과는 달리 6일무로 구성되었다. 석전제 후에 진행된 강연회에서는 교육칙어가 교부되었고, 일본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새롭게 해석된 온고지신이 강연주제로 사용되었다. 당시 석전제는 단지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을 추모하는 행사라기보다는 조선인을 일본의 신민으로 동화시키려는 시책 확산의 장이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요컨대, 『경성신보』와 『경성일보』는 조선 공연예술에 관하여 기생의 악무와 일본 관련 기사로 매우 제한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조선 공연예술에 대한 두 신문의 보도 방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경성신보』와 『경성일보』는 조선의 음악과 무용을 공연예술로서의 예술성, 다양성, 가치의 측면에서는 다루지 않고 총독부 정책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908년~1912년 기사에 보이는 조선 공연예술
 Ⅲ. 1915년 기사에 보이는 조선 공연예술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부록

저자정보

  • 이지선 Lee, Ji-Sun. 숙명여자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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