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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compelle intrare’ : 도나투스파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원문정보

The ‘compelle intrare’ in Augustine : A Case Study on the Relation with the Donatists

변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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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Compelle intrare’ of the Luke 14,23, which was introduced by St. Augustine through his debate against the Donatists, has exerted ponderable influence on the Catholic Church’s doctrines of the Middle Ages and beyond, especially on the legitimacy of the Church’s demeanor toward the persecution upon heresy and pagans. This bought him infamy to be called as the first theorist for the inquisition. However, St. Augustine refused compulsory interruption by the state and embraced ‘compelle intrare’ preferring dialogues with the Donatists. This process of changing his position was part of his pastoral strategy. With a passion as a shepherd, he answered to the tragic situation of his time to protect his flock from the violence of the Donatists and bring them into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by this change. Furthermore, the bishop of Hippo emphasized that it should be the actions from love not from compulsory methods. What should be noted is that ‘compelle intrare’ is not forcing the faith. After A.D. 405, St. Augustine regulated the Donatist as heresy, but this regulation has been given for the communion of the Church, not for the forced conversion. In this context, St. Augustine did not introduce a theory for the forced conversion. Therefore, St. Augustine should not be presented as the father or basis of the Inquisition for heresy during the Middle Age. It should be considered as a contingency action instead. Moreover, by examining the history with the eyes of faith, it should be understood as the trial to introduce a possibility that the God could provide an opportunity for genuine conversion through the power of the state.

한국어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을 통해 제시한 루카 14,23의 ‘compelle intrare’는 중세와 그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교의, 특별히 이단과 이교 박해의 적법성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숙고할만한 영향을 행사하였다. 이로 인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최초의 종교재판 이론가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의 개입을 통한 강제적 방식을 거부하면서 도나투스파와의 대화를 선호하던 아우구스티누스가 ‘compelle intrare’를 수용하는 입장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사목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자신의 양떼를 도나투스주의자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을 다시 가톨릭교회의 일치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려는 목자의 열정으로 동시대의 비극적 상황에 응답한 것이었다. 더욱이 히포의 주교는 강제적 방식이 사랑의 행위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compelle intrare’가 결코 신앙을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비록 405년 이후에는 도나투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지만, 이는 일치라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강제로 개종을 시키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강제에 의한 개종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세 이단재판의 원조 혹은 근거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종의 비상조치로 간주해야 한다. 또한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면서 하느님이 국가 권력을 통해서도 인간에게 진정한 회심의 기회를 어떻게 만들어주실 수 있는지 제시하고자 했던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compelle intrare’로의 과정
 Ⅲ. ‘compelle intrare’의 정당화
  1. 아우구스티누스 입장의 변화
  2. 세속 권력에 대한 호소의 원인
 Ⅳ. 나가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저자정보

  • 변종찬 Jongchan BYEON. 가톨릭대학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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