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drafts of Buddhist paintings are made in life size, considering the place to enshrine the painting, icon, size and mounting type. Among them, the private collection of
한국어
불화 초본은 제작할 그림의 봉안처를 염두에 두고 도상과 크기, 장황형태까지 고려하여 실물크 기로 조성한다. 그 중 개인 소장 <신중도 초본>은 ‘出草画 金禮芸’이라는 묵서와 함께 그림 전면에 색과 천의의 명칭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초는 불화의 밑그림인 초본을 그리는 일 또는 그 소 임을 맡은 화사를 의미하고, 김예운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승 상규의 본명이 므로 이 초본은 ‘禮芸堂 尙奎’가 출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신중도 초본>의 도상은 8곡 병풍을 배경으로 대범천·제석천·위태천을 위시한 天部와 天龍部의 여러 제성중이 儀式道場에 강림한 찰나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1769년 『請文』이나 1826년 『作法龜鑑』 같은 신중 의식문을 근거로 하였다. 이러한 신중 도상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 기 전반에 도붕이 신중과 주악천인 도상을 결합하여 廣度寺 <신중도>(18-19세기)를 조성하였다. 그 리고 1844년 체정과 대원, 세원이 해금악공을 주축으로 전체적인 구도를 갖춘 奉恩寺 <신중도>를 제작하고, 1868년 영환과 응석이 봉은사 도상을 연화합장을 한 제석천과 용고악공으로 바꾸어 興國寺 <신중도>를 완성하였다. 이후 상규는 영환이나 응석과 화업을 같이하며 흥국사 도상을 수용하고 냉철하게 분석한 뒤 어 색한 부분은 의식문이나 『樂學軌範』같은 문헌을 철저히 고증하여 <신중도 초본>(19세기 말)으로 재창출하였다. 이로써 <신중도 초본>이 화연관계에 있던 환감과 긍법, 윤익, 응륜, 봉법에게 模本으로 인식되고 그들 사이에 공유되며 유사한 大芚寺 <신중도>(1901)와 靑蓮寺 <신중도>(1905), 靑巖寺 <신 중도>(1914)가 제작되게 되었다. 특히 응륜과 봉법은 도상은 물론 색까지 유사한 청련사 <신중도>와 청암사 <신중도>를 조성함으로써 비슷한 색구조의 불화가 확산되었다. 이처럼 상규는 불화의 도상적 근거가 되는 각종 불교경전이나 의식문, 전적 등을 두루 익히고 도상을 출초할 때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세부 모티프나 색을 짜임새 있게 창출하여 다른 화승들 에게 도상을 전파하는 허브 역할을 하였다.
목차
Ⅱ. 禮芸堂 尙奎의 작품과 출초경향
Ⅲ. 신중도 초본의 畵面構成과 色名
Ⅳ. 신중 도상의 受容과 變容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