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will review the Mitogaku a significant impact on the mind of the Shishi in the Late Tokugawa and Early Meji Period. For example, Shouin Yoshida and Takamori Saigou called the exponent are Seishisai Aizawa who was Mito Samurai and people influenced by "imperialism" thought of Toko Fujita.. The basis of the "imperialism" thought of such Mitogaku has the understanding for Justification theory of lord and vassal relations. I discussed this article through a representative book of Mitogaku from a point of view called Justification theory. I discussed it in this article around Dainihonnshi · Seimeiron · Jinshinkyoshusetsu. In addition, I confirmed it through Kanzou Uchimura who was Christ believer of the Meiji it was modern times, and how Justification theory acted.
한국어
본 논문은 일본의 幕末·維新 시기에 지사(志士)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친 미토학(水戶學)을 검토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 인물이라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등은 미토 번(藩)의 무사였던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澤正志斎)와 후지타 도고(藤田東湖)의 ‘존왕(尊王)' 사상에 감화된 인물이다. 미토학의 ‘존왕' 사상의 기저에는 명분론(名分論)적 군신(君臣)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보고, 미토 학자의 저서를 통해 ‘명분론'이라는 관점에서 논한 글이다. 여기에서는 도쿠가와 미츠쿠니(徳川光圀)의 『大日本史』· 후지타 유코쿠(藤田幽谷)의 『正名論』·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斎)의 『人臣去就説』을 검토하였다. 나아가 일본 근대의 「명분론」은 기독교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가를 메이지 기독교 신자인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를 통해 확인하였다. 도쿠가와 막번체제 하에서 유교적 입장에 기초한 『大日本史』는 주자학적 역사사상을 바탕으로 일본 역사의 ‘皇統의 正閏’과 ‘人臣의 是非’를 「도덕적 명분론」의 기준에서 밝히고자 하였다. 『正名論』은 유교적 명분론을 일본적 상황으로 바꿔 이해하고 막부는 역성혁명이 없는 만세일계의 황실을 익찬할 것을 주장하였다. 『人臣去就説』에서는 일본적 군신관계의 이해를 다시 유교전통적 해석으로 되돌려 놓았다. 근대에 이르러 유교적 군신관계를 기독교적으로 음미한 우치무라에게는 미토학의 심정과 에토스가 그의 기독교 수용에 있어서 토대의 한 부분을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어
本論文は、幕末·維新期における志士たちの精神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水戸学」を検討したものである。例えば、幕末·維新の代表的人物と呼ばれる吉田松陰、西郷隆盛などは、水戸藩士であった会沢正志斎と藤田東湖の「尊王」思想によって感化された人である。このような水戸学の「尊王」思想の基には名分論的君臣関係に対する理解があると見て、その水戸学者の著書をとおして「名分論」という観点から論じた積りである。 ここで取り上げたのは、徳川光圀『大日本史』・藤田幽谷『正名論』・会沢正志斎『人臣去就説』であり、また、近代になって「名分論」はどのように働いたかを明治の基督信徒である内村鑑三を通して確認した。 まず、前者は共に徳川幕藩体制の下に、儒教的立場に基づきながら、『大日本史』は、朱子学的歴史思想に基づいて、日本の歴史において「皇統の正閏」と「人臣の是非」を「道徳的名分論」の基準で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幽谷の『正名論』は、儒教的「名分論」を日本的に読み替えて(「名分論」が直ちに「国体の尊厳」に繋がるので、臣下は条件なく絶対服従すべき)理解し、幕府は易姓のない万世一系の皇室を翼賛すべきことを唱えた。『人臣去就説』では、日本的君臣関係の理解を再び儒教伝統的解釈に戻した。要するに、「君君たらざれども臣臣たらざるべからず」・「忠臣は二君に仕えず」から「君臣義合」・「諫不聴去」へ変化であった。近代になって基督信徒であった内村鑑三は、儒教的君臣関係をキリスト教的に読み替え、君に対する忠誠を神に果たしたのであるが、彼の水戸学に打たれた、その心情とエトスは、キリスト教受容において土台として役割を果たしたといえよう。
목차
Ⅰ. はじめに
Ⅱ. 水戸学の定義・思想・評価
1. 水戸学の定義
2. 戦後の水戸学の思想と評価― 丸山真男と遠山茂樹を中心に
Ⅲ. 水戸学の書物に見える名分論
1. 徳川光圀の『大日本史』 ― 名分論と国体論の基礎
2. 藤田幽谷の『正名論』 ― 日本的名分論
3. 会沢正志斎の『人臣去就説』 ― 儒教伝統の名分論への復帰
Ⅳ. 近代における水戸学― 内村鑑三の愛国心をめぐって
Ⅴ. おわりに
<参考文献>
要旨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