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odern history of Japanese war-poetry and radio-broadcasts involving YONE Noguchi. There is a long history of war-poetry in the West, but war poetry was not common in traditional Japanese poetry in the pre-modern period. In other word, Japanese war-poetry is a modern genre, which was approached through the reception of Western literary thoughts and methods. This article firstly verifies that Noguchi’s article, written in 1918, which served as an introduction on the emergence of English war-poetry during WWI and argued its innovative point upon the English poetic history. Noguchi’s explanation about the poetical modernization and the role of poets was handed down to the Japanese of the next generation: such as ‘the Grass-roots poets' (民衆詩派) and the modernists of the 1930-1940’s. Secondly, this study focuses on the fact that the mass production of war-poetry went out over the pervasiveness of radio-broadcasts. From the beginning, it was operated as a national public affair, or the propaganda agent for public strategy. As one anonymous author of the magazine ‘Bungei-shunjyu' (文芸春秋) has critically argued, the purpose and role of radio was not only ‘news reporting’, but ‘education’, ‘consolation’. This study, thirdly, approaches that of the self-understanding and psychological repression of poets in the wartime years, and analyzes the possibility of expression while under national control, through concerns of the obverse & reverse sides of radio-broadcasting.
한국어
본고는 시인 노구치 요네지로(野口米次郎)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미디어의 발흥(勃興)과 전쟁시(戰爭詩)의 계보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서구의 시사(詩史)에서는 전쟁을 테마로 한 시는 수많이 존재했지만 일본 시가의 전통에 있어서는 전쟁을 테마로 한 것은 극히 드물었다. 일본의 전쟁시란 서구로 부터의 영향을 받는 근대시인들 사이에서 의식되어 몰두하게 된 극히 근대적인 장르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가장 먼저, 노구치 요네지로가 제1차 세계대전의 젊은 전쟁시인의 출현과 종래의 국민시(國民詩) 전통에 주목하여 1918년에 발표한 논고를 검토하였다. 그는 영국의 루퍼트 브룩(Rupert Brooke)이나 제임스 엘로이 플레커(James Elroy Flecker)에 의한 리얼리즘의 전쟁시 출현이 영시(英詩)의 혁신이나 쇄신의 조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일본의 시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말했다. 이러한 문학사관과 시인의 역할의식은 일본의 민중시파나 쇼와시대(1926년∼1989년)의 모더니즘 시인 등에 의해 계승되어 갔다.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이 제1차 세계대전에 태어난 전쟁시에 대한 인식이 그 후의 사회와 어떻게 이어졌는가라는 점이다. 일본에 있어서 1930년대부터 전쟁시나 내셔널리즘시가 양산된 시대는 라디오 보급의 시대와 딱 겹친다. 문예춘추(文藝春秋)의 「라디오 익명비판」기사의 검증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라디오는 개통된 당초부터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 국제적 선전을 위한 미디어이며 ‘보도’, ‘교육’, ‘위안’이 그 역할이었다. 애초에 올바른 정보의 빠른 전달이 주안점이었던 미디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즉 라디오방송국이 요구하는 전쟁시의 내용과 그 역할에 제약이 생기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그러한 제약이 있는 가운데 시인들이 어떠한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자신들의 역할을 의식하고 있었는가, 국가를 짊어진 사명감의 배후에 있는 망설임이나 저항의 심경을 어떻게 표현하려 하였는가를 검증했다. 노구치 요네지로를 포함해서 안도 이치로(安藤一郎) 등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의 전쟁시인을 들며 전쟁시의 위치를 모색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의 전쟁시인의 출현에 대한 반응과, 라디오의 대두라는 사회문제는 일본의 전쟁시를 생각함과 동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본고에서 논하였다.
일본어
本稿は、詩人・野口米次郎を中心に、新しいメディアの勃興と戦争詩の系譜について、考えたものである。西欧の詩史のなかでは戦争をテーマにした詩は数多く存在したが、日本の詩歌の伝統においては、戦争をテーマにしたものはきわめて稀であった。日本の戦争詩とは、西欧からの影響を受ける近代詩人たちのあいだで意識されて取り組まれるようになったきわめて近代的なジャンルであったといってよい。本稿では第1に、野口米次郎が1918年に発表していた、第一次世界大戦時の若き戦争詩人の出現と従来の国民詩の伝統に注目した論考を検討した。彼は、英国のルパート・ブルックやフレッカーらによるリアリズム式の戦争詩の出現が、英詩の革新や刷新の潮流をひきおこしていることを解説しながら、日本の詩人としての役割と使命がどうあるべきなのかを説いた。このような文学史観と詩人の役割意識は、日本の民衆詩派や昭和期のモダニズム詩人らに引き継がれていく。第2に注目したのは、この第一次世界大戦時に生まれた戦争詩認識がその後の社会とどう繋がったのか、という点である。日本において1930年代から戦争詩やナショナリズム詩が量産された時代は、ラジオの普及した時期とまさに重なった。『文芸春秋』の「ラジオ匿名批判」記事の検証からも明らかにされたが、ラジオは、開通当初 から国家の統制下にある国際広報戦のためのメディアであり、「報道」「教育」「慰安」が役割であった。そもそも正しい情報の速報性が主眼におかれたメディアではなかった。それゆえに、ラジオ放送局から求める戦争詩の内容とその役割に、おのずから制約が起こるのであった。第3には、そのような制約のあるなかで、詩人らがいかなる心理的抑圧をうけ、自らの役割を意識していたのか、国家を背負う使命感の背後にある戸惑いや抵抗の心境をいかに表現しようとしていたかを検証した。野口米次郎を含め、安藤一郎らのモダニスト詩人らは、第一次世界大戦の英国の戦争詩人らを挙げながら、戦争詩の在り方と位置を模索したのである。第一次世界大戦の英国の戦争詩人の出現に対する反応と、ラジオの台頭という社会問題は、日本の戦争詩を考えるうえで重要な意味をもっていたことを、本稿では論じた。
목차
Ⅰ. はじめに――戦争詩人としての評価をかんがえる
Ⅱ. 近代日本の<戦争詩>の系譜
Ⅲ. 野口米次郎の生きた時代の概説
1. 英米でのデビューから戦争詩人へ
2. 第一次世界大戦時の英国の戦争詩人らへの関心
Ⅳ. ラジオというメディアと その役割
Ⅴ. 戦争詩の位置
1. 1930年代後半の日本の文学者たちの役割意識
2. 野口米次郎の戦争詩と反戦の思想
VI. おわりに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