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재조일본인 작가들이 ‘조선문단’이라는 용어로 발화해온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어문단의 부재․결핍의식에도 불구하고 앞의 회고처럼 그 기원을 탐구하고 존재를 주장하려는 욕망이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욕망은 늘 똑같은 형태로 출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 따라 굴절되거나 변형된다. 본고는 그 굴절의 한 측면을 일본어잡지 『조선공론』에서 찾고자 한다. 그것은 1920년대 초반 해당 미디어의 문예란 재편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는데, 이 시기 문예란의 확대와 세분화를 통하여 ‘조선문단’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한 『조선공론』의 변화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문단에 대한 결핍 의식과 욕망은 그 이전과 동일하지만 그 안에서 전통 장르 창작집단에 머무르던 수준을 뛰어넘어 스스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둘째는 1920년대 초반의 이러한 변화들이 식민지 조선의 출판시장 활성화와 동인지 시대를 거친 조선인 문학자들의 문단 형성기라는 동시대 문학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일본의 전통적 장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모임(‘會’와 ‘社’)에서 그것들을 통합하고 재구성한 ‘조선문단’으로 나아가려 했던 『조선공론』의 미디어 기획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고 특히 조선공론사의 제2대 사장으로서 1920년대 『조선공론』을 이끌어갔던 이시모리 히사야(石森久彌)의 텍스트가, 재조일본인 문단이 당면했던 ‘식민 주체의 자기증명’이라는 과제와 접합되는 지점에 대한 고찰을 시도해 본다.
일본어
同時代の朝鮮人文学者たちを排除しながら自ら「朝鮮文壇」と称して来た植民地朝鮮の日本語文壇は,「内地文学からの排除」と「諸国文学への帰属」という二重の問題に逢着された植民主体の自己証明の一つの方式として,「植民文学」のオリジナリティ―を主張した. 1920年代初, 『朝鮮公論』の文芸欄は, 創刊期の1913年から運用されて来た<公論文壇>欄とは辨別される<半島文芸>欄を設置して,そういう慾望を実現しようとしていた.<半島文芸>欄は伝統的な詩歌ジャンル中心に構成されていた既存の<公論文壇>欄では担当できなかった散文ジャンルを収用しながら,<創作>項目を通じて短篇小説が本格的に掲載されるように橋梁の役割をしていた. しかも, それは必然的に消滅される空間であったともいえることである.これは向後長い期間のうちに植民地朝鮮の日本語媒体を通じて日本語小説が読書市場の優越な位置を占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事態を予告していたことともいえる. 一方, こういう『朝鮮公論』文芸欄の再編と関聯された中心人物の石森久弥は, 植民․移住者の安穏そうな日常が「不気味なこと(the uncanny)」と変わる瞬間を捕捉して, 植民․移住者としての生の不安を露出させ, 自ら覚醒した他者性をどう克服するべきことかという課題を附与した. この時期『朝鮮公論』が「文壇」の「欠乏」を認定しながらも,それを実在として認識したという事実と,石森の小説が植民地朝鮮での実存という問題に結びつけられた素材たちを発掘して行ったという事実とは, 互いに聯関されている. 「外地」としての他者性と「国民」․「国語」の同一性が同時に附与された彼らにとって,「文学」はもう複雑で高次元的な層位から自らのオリジナリティ―を新しく構成するという可能性を提示してくれたものであった. でも, 『朝鮮公論』は朝鮮人たちの「国文=日本文」の懸賞公募を通じて彼らを朝鮮内の日本語․メディアの消費/生産の主体として認識したことにも拘らず,植民者の「朝鮮文壇」という次元では依然として彼らを排除していた.
목차
2. 문예란의 이중구조와 ‘창작’의 (불)안정성 : ‘공론문단’과 ‘반도문예’
3. 식민 주체의 그로테스크한 자기증명 : 폭탄사건과 조추(女中)
4. 마치며―조선인 독자층의 확대/제한과‘국어=일본어’의 이데올로기
<参考文献>
要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