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겐잔의 사상사적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주자학, 진사이학 혹은 소라이학과 같은 일정한 체계를 가진 사상을 절충학에서 찾기는 어렵다해도 소라이학 이후의 유학의 전개 과정에서 절충학은 어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호소이 헤이슈처럼 학문이 현실 정치와 사회의 상황을 자신의 문제라 여기면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절충학자가 있는가 하면 이노우에 긴카⋅가타야마 겐잔⋅오타 긴죠처럼 경서 주석 그 자체에 전념하는 학자들도 출현했다. 겐잔의 문헌고증에 전념하는 방법은 오다 긴죠와 같은 후의 고증학의 길을 여는 전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겐잔의 중요성은 바로 고증학적 경향의 토대를 만들고 이후의 학자들은 겐잔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고증학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즉 겐잔의 경서 주석은 소라이의 고문사학에서 고증학으로 변화 발전해가는 견인차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겐잔의 경서 주석은 소라이학을 극복하여 가능한 한 정확한 경서를 주석하기 위해 경서의 다시 읽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겐잔은 관정이학의 금에 의한 주자학 부활을 향해 가는 사상사의 변동과정에서 경서 이해의 방법론을 제공했다고 보인다. 이러한 겐잔의 문헌고증학적 방법은 소라이 고문사학적 방법의 진화발전의 과정에서 출현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어
日本思想史において18世紀後半期は徂徠学の周辺に集まってきた知識人の多くが「反徂徠学」に転向していく時期でもある。この「反徂徠学」は折衷学を生み出し、やがて寛政異学の禁による朱子学の復活という形に姿を変えながら学問界の潮流を形作っていく。その思想史の変動過程において徂徠学を守ろうとする徂徠門人の学問的努力と、徂徠学から転向して折衷学や正学派朱子学に移っていく所謂「動揺する知識人像」が見える。こうした中で本稿は徂徠学を学び、後に徂徠学から思想的に転向していく過程で「反徂徠学」を主張した片山兼山の経書注釈方法が持つ意味を分析した。兼山は文献考証に専念したが、それは徂徠が主張した「古文辞学」の粗末さを乗り越えるための方法であった。兼山によれば徂徠は「古文辞」が何かを知らない、経書を徹底的に読まないと判断して、聖人の道の本来の姿を求め経書注釈に尽くし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兼山の経書注釈の方法は、太田錦城のような後の考証学の道を開く前提になったと思われる。兼山の重要性は、考証学的傾向の土台を作り、後の儒者は兼山に影響され、本格的な考証学の時代を開いた点にあるだろう。兼山の経書注釈は、徂徠学の古文辞学から考証学への変化発展していく牽引車の役割りを果たし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목차
2. 공자의 도는 선왕의 도
3. 고문사학의 변용
4. 경중심의 경학
5. 맺음말
<参考文献>
要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