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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nted Haedong chegukki and Korean-Japanese Relations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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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기』의 인쇄본과 16세기 초기의 조선-일본관계

Kenneth R.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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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새로운 사료에 의하면 조선왕조는「正德七年二月十七日」(1512年)에 『海東諸國紀』를 부산진에 보낼 것을 명하였고, 동년 동경대학 사료편찬 소가 소장하고 있는 『海東諸國紀』가 인쇄되었다. 또한 같은 해 2월27일 에는 의정부 고관 등이 1510년 4월(正德5年)에 일어난 삼포왜란이후 처 음으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무역선(小貳氏-2隻, 對馬守護-8隻, 九州를 기반를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통행인-4隻)에 대응에 대하여 중 종에 건의해 그 대책이 시행되었다. 이러한 『海東諸國紀』의 인쇄과정의 배경으로서, 삼포왜란에 의한 부 산항의 손실, 1511년 조선과 일본의 외교재개, 그리고 1512년 2월 17일 까지 조선왕조가 정한 일본인 통행인과의 무역재개가 있었다. 그 후 1512년 8월에 조선왕조는 壬申條約을 對馬의 守護와 맺었고, 그 조약에 는 1509년과 1510년에 對馬守護에 전달하지 못했던 통행규칙의 변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壬申條約에 의거해 조선왕조는 일본인통행인의 圖 書사용을 조사하고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는 통행권을 박탈하였다. 그 결과, 『海東諸國紀』에서 보이는 통행인의 대한 記述들이 주목되었고 조 선왕조 관리들의 『海東諸國紀』에 대한 사용법과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일본어

新出の史料によると, 朝鮮王朝わ「正德七年二月十七日」(1512年)に『海 東諸國紀』を釜山鎭に送ることを命じた。同年, 東京大學史料編纂所所藏の『海東諸國紀』が印刷されたと思われている。同, 正德七年二月十七日に朝鮮 王朝議政府の高官などは、1510年4月(正德5年)に發表に三浦反亂以後, 初 めて來朝した日本人通交者の交易船(小弐氏-二隻, 對馬守護-八隻,と九州に 存在するとされた通行者の四隻)への對應について、中宗王に啓し、その方策が 施行された。 この『海東諸國紀』の印刷過程の背景として、三浦反亂による釜山浦での損 害, 1511年朝鮮と日本の外交の再開があった。その中にわ、朝鮮王朝が、1512 年2月17日までに朝鮮王朝が決めた日本人通行者との交易が再開があった。そ の後 1512年8月に、朝鮮王朝は壬申條約を對馬の守護と結んだ。その中に は、朝鮮王が1509年と 1510年に對馬守護に傳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通行規 則の變更が含まれてえた。壬申條約によって、朝鮮王朝は日本人通行者の圖書 使用を調査し、問題がある場合, 通交權を剝奪した。その結果,『海東諸國紀』に見られる通交者の記述が注目され、朝鮮王朝の官吏による『海東諸國紀』の 使い方と讀み方は、1470年代に作成された時とは異なった來た。

목차

Ⅰ. Introduction
 Ⅱ. The Yuktang Mungo Textn
 Ⅲ. Negotiations and Trade Privileges in 1511 and 1512
 Ⅳ. Conclusion
 List of Chinese Characters
 日文要旨
 국문요지

저자정보

  • Kenneth R. Robinson 일본국제기독대학교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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