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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라도 진도목장의 운영 실태

원문정보

Operational Condition of Jindo Ranch in the 19th Century

김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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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Ranches in the Choson Period were regarded as significantly important in terms of constituting uses of national property. The Choson Period investigated a suitable proposed site for building a ranch. As a site for Jeonlado(全羅道) the climate in winter was temperate and its abundant aquatic plant made it the optimal site for a ranch.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Choson Period, 34 ranches were established in Jeonlado among which 7 were Jindo(珍島) Ranch(牧場). Unfortunately,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from 1592 to 1598 obliterated the horse registration record. In particular, ruined ranches were reclaimed by residents in order for them to acquire agricultural land. Jindo Ranch was no exception. 7 ranches established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Choson Period disappeared and only that on Jiryeok(智力) Mountain remained for long in the middle of 17th Century. What caused these situations? Ranches on Jiryeok Mountain were situated at the southern end of Jindo. That is 400km from Haenam-gun (海南郡). Nonetheless, continued existence of ranches on Jiryeok Mountain until the 19th century was reasonably acceptable considering its port and sea route. This writing is a case study for the operational conditions of Jindo Ranch in Jeonlado in the 19th century. Numerous materials were researched and analyzed. These came from the fortress and palisade and were official documents of the servant temple as “mimeographed material for ranch(牧 場色謄錄)” and “pastoral records for Jindo Island(牧場地圖)”. This allowed the entire reconstruction of operational conditions of the ranch including the geographical conditions of Jiryeok Mountian, tax receipts of the ranch supervisor, shepherds, ranch horses and ranch people.

한국어

조선시대의 목장은 국가 재용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시하였다. 조선정부는 목장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후보지를 전국적으로 조사하였다. 전라도의 경우 겨울철에 온화하고, 水草가 풍부하여 목장으로 최적지였다. 조선전기 전라도에 34개의 목장이 개설되었다. 이 가운데 진도목장이 7개소이다. 그러나 임진~정유란을 겪으면서 馬籍이 유실되었다. 특히 주민들이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폐목장을 개간하였다. 진도목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전기에 개설되었던 7개의 진도목장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17세기 중엽에 유일하게 지력산 목장만 존립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지력산 목장은 진도의 남쪽 끝에 위치하였다. 즉 육지인 해남과의 거리가 무려 100여 리나 떨어진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력산 목장이 19세기까지 지속 가능하였던 이유는 포구 와 바닷길에서 찾아진다. 이 글은 19세기 전라도 진도목장의 운영 실태에 관한 사례연구이다. 분석 자료는 19세기 사복시의 공문서인 󰡔牧場色謄錄󰡕을 비롯하여 󰡔珍島牧場牧誌󰡕 등 다수의 성책 고문서이다. 이를 통해 19세기 지력산 목장의 입지, 감목관, 목자, 목마 그리고 牧民들의 조세 수납 실태 등 목장 운영을 재구성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목장의 분포와 자료소개
 Ⅲ. 목장의 입지와 조직, 그리고 목마
 Ⅳ. 목장 소속 牧民의 租稅 수납 실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경옥 Kim, Gyung-ok. 목포대학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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