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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 Ch’aeho’s Views on Japan:Between the Longing for “Civilization and Progress” and Anti-Japanese Animosity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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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채호의 일본관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신채호는 통념적으로 ‘항일운 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일본관은 꼭 일본에 대한 적대심만을 내포한 것은 아니 었다. 개화기의 신채호는 ‘개화선배’로서의 일본의 ‘주체적 외부 문명 수용’ 등을 적지 않게 흠모하는 동시에 한국인들의 ‘외부 문명 모방 지향’, 그리고 전근대적 한국 사회 의 “노예성” 등을 부정시했다. 이 부분에 대한 신채호의 시각은, 그 의도는 비록 신속 한 ‘근대화’에 대한 열망에 기반했지만 그 형태는 사실상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조선에 대한 “정체성론”, “타율성론”과 일맥상통했다. 양쪽의 정치적 지향은 정반대였지만 사 회, 문화 측면에서 양쪽은 근대지상주의 영향권에 속했다. 1920년대의 무정부주의자 신채호는 대체로 더 이상 일본을 ‘모델’로 생각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비하 인식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와 동시에 고대사학자 로서의 신채호는 일본을 “백제의 제자”, 백제문화의 일종의 “연장”으로 생각하면서 이 를 한국인의 ‘민족적 자랑’으로 인식했는데, 이와 같은 시각은 남북한 사학에서 그대로 계승, 발전됐다. 고대 일본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과 관련된 그의 평가는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백제와 일본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것 자체는 당시 일본 사학의 영향이 라고도 볼 수 있다. 다소 균형을 잃은 신채호 식의 일본관은 이제 남한 사학에서 상당 부분 극복됐지만, 일본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최근 일각의 평가에서도 신채호와 같은 근대지상주의의 잔영(殘影)을 엿볼 수 있다
목차
2. 제자이자 적대자, 모델이자 침략자 : 신채호가 본 일본의 이중성
3. 신채호 일본관의 창조적 극복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