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일반논문

구월산 삼성사 복원 과정을 통해 본조선 초기 사대부의 신이인식 - 황해도 기이담론 연구의 일환으로 -

원문정보

The perception of the sacred of the scholar-gentry class inthe early Joseon Dynasty through the discourse on the restoration of Samseong Temple of Guwol Mountain - link in the study of the strangeness discoursein the Hwang-hae province -

박성지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It is known that the scholar-gentry class of Joseon Dynasty, which adopted the ideology of Neo-Confucianism as the governing ideology, rejected the heretical symbol system of the people-shamanism, Buddhism, Feng Shui and Taoism. However, the discourse on the restoration of Samseong Temple of Guwol Mountain in Hwanghae Province during the period from King Sejong to early King Seongjong shows that this common sense did not work properly. The perception of the sacred by the scholar-gentry class and the royal family varied greatly depending on the political situations they were in. The scholar-gentry class accepted the people’s beliefs and supported their gods for an efficient governing of the country districts and furthermore as a way to overcome a national disaster. However, the royal family completely ignored it. This was because they had an exclusive recognition to apply the concept of the sacred to the founder of Joseon.

한국어

그간 진행된 조선시대 기이담론 연구는 주로 귀신담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성리학과 이단(무속, 불교, 도참 등), 혹은 사대부와 일반 백성이라는 양 축을 전제한 후, 그 담론적 경합을 다루고 있다. 기이담론의 연속성과 담론 구도의 다각화를 위해서는 황해도 지역을 무대로 한 기이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고의 연구대상은 세종부터 성종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황해도 구월산 삼성당 복원을 둘러싸고 진행된 담론이며, 이를 통해 유교적 합리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대부 신이인식의 특징과 의미를 규명하고자 했다. 아울러 사대부와 뚜렷이 구별되는 왕실 신이인식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논의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황해도 문화현 문화 유씨 가문의 유관, 유사눌이 세종에게 올린 상서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사대부가 민간담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이를 수용했으며, 민간음사인 구월산 삼성당을 복원시키기 위해 정치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살폈다. 둘째, 김일손의 <회로당기>와 비교하면서 사대부의 민간 신이담론 수용이 향촌사회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음을 밝혔다. 셋째, 이선제의 상서를 통해 고려 이래의 신이사관이 계승되고 있음을 분석했다. 유관, 유사눌조차 일정한 거리를 두며 언급을 삼갔던 신이사관을 이선제가 전적으로 받아들인 일차적 계기는 기근이었다. 막다른 상황에서는 민간 음사라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넷째, 왕실은 사대부들의 요청에 일절 응답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써 거부의사를 밝혔다. 왕실은 국초부터 단군과 관련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역사화 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조선 건국주에게만 신이를 적용하려는 배타적인 인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대부와 왕실의 신이인식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사대부가 민간 신이담론을 수용하는 태도 : 유관, 유사눌의 상서를 중심으로
 3. 민간 신이담론 수용에 대한 정치적 의도
 4. 민간 신이담론 수용의 배경과 신이사관의 부상 : 이선제상서를 중심으로
 5. 왕실의 침묵과 그 의미 : 왕실의 신이인식 해명을 위한 단서로서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박성지 Park, Sung-ji. 가천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7,9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