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アチェの資源開発と紛争に関する一考察

원문정보

A Study on Long-Staying Korean Viewpoint about Japan

金光男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nvestigates the basic cause of the frightful and prolonged conflict in Aceh, Indonesia, by looking at the history of the country and its petroleum and natural gas resources development.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Dutch colonial government began a large-scale military campaign in order to secure oilfields in East Aceh. At that time, the Dutch was interested in not only products such as coffee and spice, but also natural resources including petroleum, rubber, and tin. Thus, the development of natural resources in Aceh fueled the Dutch to expand their colonial territory. During the Japanese military administration period, the Japanese army tried to benefit from Aceh’s natural resources. After the surrender of the Japanese army, an Indonesian independence movement broke out. Also, the conflict escalated over the control of Aceh-North Sumatran oil between the Dutch army and Indonesian nationalists, as well as infighting between Acehnese and Javanese. After Indonesia became independent, the struggle between the Acehnese local power and the Javanese central government continued over control of the Aceh-North Sumatran oil fields. Rebellions against the Aceh-North Sumatran oil nationalization arose while the U.S. government and the Dutch oil companies monitored the nationalization process. Finally, through the institution of martial law, the Indonesian army took control of economic properties including the Aceh-North Sumatran oil facilities. This action of the Indonesian army was related to the reparation agreement made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The agreement included provisions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would invest in the Aceh- North Sumatran oil facilities and purchase their oil. Thus, the Japanese market and its capital assistance facilitated the restoration of the Indonesian oil fields and the oil export to Japan. But this did not help meet the Acehnese local society’s needs for petroleum products. The main purpose of the national oil company was just to obtain foreign currency by their crude oil. During the time of the Suharto administration, the government strongly promoted the centralization of power for both economic development and political stabilization. In Aceh, the central government focused on the development of natural resources, especially natural gas exploitation in North Aceh, and built large-scale industries called the Lokhseumawe Industrial Zone. These industries yielded huge foreign currency for the Jakarta government, but they did not contribute to the local economy. In other words, there was no positive impact on other industries and employment in the local society. Moreover, the government expropriated the local habitants of their vast land without enough compensation for building the industrial zone. Thus, the gap between non-Acehnese workers in the enclave and habitants in the local society rather widened. This paper concludes that the long and intolerable conflict in Aceh from 1976 to 2005 was due to two main factors. First, the Acehnese were extremely dissatisfied at the Java-centric and unjust policy for economic development. And second, the Acehnese harbored fear and hatred for the brutal national army.

한국어

본고에서는 인도네시아 아체(Aceh)의 석유ㆍ가스의 자원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것과 관련된 분쟁을 알아보고 장기간에 걸쳐 처참했던 아체 분쟁의 한 가지 요인을 고찰했다. 아체의 석유 개발은 네덜란드가 식민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유발한 분쟁의 한 가지 요인이었다. 또 한 석유 자원 등을 구하기 위해서 수마트라 섬(Sumatra)에 침공한 일본 군정기를 거쳐 인도네시아에서 는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아체 북부의 수마트라 석유를 둘러싼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의 각축 이 전개되었고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아체인과 자바인의 각축이 전개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독립 후에도 아체의 지방정부와 자바의 중앙정부 사이에 아체 북부의 수마트라 석유 관리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한편 미국․네덜란드 양국 정부가 석유 자본을 주목하는 가운데 아체 북부의 수마트라 석유의 국유화가 모색되는 과정에서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을 진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계엄령이 발령되어 아체 북부의 수마트라 석유 시설을 포함한 경제 자산에 대한 관리가 육군 의 손에 넘어갔다. 이 육군에 의한 석유 관리는 대일배상 교섭과정에서 일본 자본에 의한 아체 북부의 수마트라 석유부 흥지원과 일본 시장에 의한 매입 계약이 체결된 것과 무관하지는 않다. 일본의 시장ㆍ자본의 출현에 따 라 육군이 본격적으로 유전 복구와 원유 수출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육군이 관리하는 국영석유공사는 원 유 수출에 의한 외화 획득을 제일의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체 지역사회의 석유 수요에는 적극적으로 부 응하지 못했다. 수하르트 신체제가 되고 나서 경제 개발과 정치적 안정의 양립을 꾀하기 위해서 행정과 재정, 산업 정 책이 한층 더 중앙집권화 되었다. 아체에서는 중앙정부에 의해서 풍부한 천연자원의 개발이 실시되었다. 특히 아체현 북부의 천연가스 개발에 의해서 가스를 원료로 하는 새로운 대규모의 공장군, 즉 Lhokseumawe 공업지대가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자카르타 중앙정부는 막대한 외화 획득을 하였지만 지역 경제에는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다. 지역주민에 대한 고용 기회과 현지의 산업 발전에 자극을 주지 못했다. 지역사회와 거리를 둔 공업지 대는 주민의 광대한 토지를 강제적으로 수용했지만 주민들이 납득이 가는 보상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 니라 공업지대에 거주하는 비아체인 직원과 지역 주민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1976년부터 2005년까 지 계속된 아체 분쟁은 기본적으로 자바 중심의 경제 개발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불만이나 불공평감을 느끼게 하였고 그것을 처참하게 진압한 국군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계속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はじめに
 Ⅱ.「資源開発と紛争」のアチェ小史
  2.1 オランダ植民地戦争
  2.2 インドネシア独立戦争
  2.3 ダルル․イスラーム反乱1953~1962年
 Ⅲ.外資と油田開発
  3.1 賠償交渉
  3.2 陸軍石油管理体制
  3.3 油田開発
  3.4 地域開発
 Ⅳ.紛争の激化
  4.1 中央集権化と開発
  4.2 社会的インパクト
  4.3 軍事作戦と人権侵害
 Ⅴ.おわりに
  5.1 地域コンフリクト緩和の可能性
 参考文献(References)
 Abstract

저자정보

  • 金光男 김광남. 国 立大学法人茨城大学 人文学部 敎授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7,2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