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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古代文学における「新羅」と「高麗」 - その用例の文化史的考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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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and “Korea” in the ancient Japanese literature - The consideration of the cultural history on these example -

일본の고대문학における「신라」と「고려」 - その용례の문화사적고찰 -

袴田光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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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deal with the legend “Silla” and “Korea” in the ancient Japanese literature .In Japanese literary works written from the 8th century during the 11th century “Korea”, Baekje, Silla and Bohai are seen as a country of ancient Korea. The largest number of examples is that “Silla”. In Kojiki, written in the 8th century “Silla” examples in 6 patients, and they are intensively marked two myths. “Silla” is portrayed as a country with advanced technology and material wealth in there, but the longing for its richness made “Silla” as the enemy to be conquered .As a result, “Silla” became an enemy or rival countries with negative images in ancient Japan. However, the hostile image of Silla diluted after ‘Manyoshu’ and the examples of the number decreased in the 10th century. On behalf of this, “Korea( Koma)” got to see many examples in the 10th century. “Koma” was used in the four senses; One is Koguryo in ancient, the second is the Korean peninsula whole, the third is Bohai , the fourth is Goryeo founded in 918 by Wang‐gon. Interesting that the name of the “Bohai” clearly wrote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 in Japanese, but in contemporary Japanese Kana‐literature had no examples of “Bohai” at all. “Koma” is used exclusively in Kana‐literature. The Kana‐literature used word “Koryo” in a very inclusive sense, because “Silla” was tasked with a hostile image as opposed to “Koryo” with traditional friendly image, and “Bohai” positioned on the extension. The change increases the “Koryo” legend “Silla” on behalf of the subject reflect the new values of Kana‐letters formed in the collapse of the old Chinese rule of law system.

한국어

본고는 일본 고대문학에 있어서 「新羅」와 「高麗」의 용례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일본 문학 안에는 고대 한국의 국명으로 고려, 백제, 신라, 발해 이 4 개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용례 수가 많은 것은 「新羅」이다. 8세기에 쓰여진 『고지키(古事記)』에서 「新羅」의 용례는 6례이지만, 이들은 2개의 신화에 집중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新羅」는 물질적인 풍요와 선진적 기술을 소유한 나라로 묘사되는데 풍요에 대한 동경(憧憬)이 거꾸로 「新羅」를 정복해야 할 적국(敵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고대문학에 있어서 「新羅」는 적국 또는 라이벌 국가로 부(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요슈(万葉集)』 이후는 신라의 적대적 이미지가 희박화되고 10세기가 되면 용례 수 그 자체도 감소하게 된다. 「新羅」 다음으로 많은 용례를 볼 수 있는 것이 「高麗」이다. 「高麗」는 4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점이 특징이다. 첫째는 고대의 고구려, 둘째는 한반도 전체, 셋째는 발해, 넷째는 왕건에 의해 918년에 건국된 고려이다. 흥미롭게도 한시문에 있어서는 「渤海」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으나 동시대의 가나(仮名) 문학에서는 「渤海」의 용례는 전혀 없고 오직 「高麗」만 사용되고 있다. 가나 문학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高麗」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新羅」가 적대적인 이미지를 띠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高麗」가 우호적인 이미지를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어서 「渤海」도 그 연장선상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新羅」를 대신하여 「高麗」의 용례가 증가한다고 하는 변화는 율령체제의 붕괴 안에서 형성된 가나 문학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일본어

この論文は日本の古代文学における「新羅」と「高麗」の用例に関するものである。8世紀から11世紀にかけての日本の文学作品の中には、古代韓国の国名として高麗、百済、新羅、渤海の4つの国の名が見られる。その中で最も用例数が多いのは「新羅」である。8世紀に書かれた『古事記』における「新羅」の用例は6例であるが、それらは二つの神話に集中的に記されている。そこでは「新羅」は物質的な豊かさと先進的な技術を持った国として描かれるが、その豊かさへの憧れが逆に「新羅」を征服すべき敵国として位置づけることにもなった。結果的に見て、古代文学における「新羅」は敵国もしくはライバル国として負のイメージを帯びていると言える。しかし、『万葉集』以降は、新羅の敵対的イメージは希薄化し、更に10世紀になると用例数そのものが減少していく。これに代わって多くの用例が見られるようになるのが「高麗」(こま)である。「高麗」は、四つの意味で用いられた点に特徴がある。一つ目は古代の高句麗、二つ目は朝鮮半島全体、三つ目は渤海、四つ目は王建によって918年に建国された高麗である。興味深いことに漢詩文においては「渤海」の名が明記されているが、同時代の仮名文学では「渤海」の用例は皆無で、専ら「高麗」が用いられている。仮名文学が極めて包含的な意味で「高麗」の語を用いたのは、「新羅」が敵対的なイメージを帯びていたのとは対照的に「高麗」が友好的なイメージを伝統的に持ち、「渤海」もその延長上に位置づけられたからであると考えられる。「新羅」に代わって「高麗」の用例が増加するという変化は、律令体制の崩壊の中で形成された仮名文学の新たな価値観を反映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

목차

<要旨>
 Ⅰ. はじめに
 Ⅱ. 『古事記』における「新羅」の用例
 Ⅲ. 「新羅」の変容
 Ⅳ. 「高麗」と「渤海」の用例
 Ⅴ. おわりに
 参考文献
 <要旨>

저자정보

  • 袴田光康 静岡大学人文社会科学部教授、日本文学専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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