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Czechoslovakian and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began to develop a closer relationship, as they both shared difficulties under colonial powers. After the Korean independence from Japan, Charles Pergler, the political companion of general Gaida, was dispatched to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s a legal consultant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 he not only had knowledge in the civil law but also was familiar with the American common law; second, he had experiences in diplomatic negotiation with the Soviet Union as he served as the first ambassador of the Czechoslovak Republic in Japan. Hereafter, Pergler introduced the American legal curriculum and ideologies of capitalism into the Korean society through the activities of the Law Society of U.S.-R.O.K. (hanmibŏmnyurhyŏphoe). Pergler worked closely with Yu Jino who was one of the founding Korean members of the Law Society of U.S.-R.O.K. and led the drafting of the constitution. Surprisingly, the first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quite similar with that of the Czechslovak's. For instance, the two constitutions both had 1) unique governance system that had elements of both a presidential system and a parliamentary cabinet system, 2) bicameral system, and 3) standards of review of the constitutionality.
한국어
한국과 식민지 지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던 체코는 청산리 대첩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청산리대첩 당시 한국 독립군에게 무기를 판매한 체코의 가이다 장군과 정치적 동반자였던 퍼글러가 미군정의 법률고문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는 법학자이자 변호사였던 퍼글러가 대륙법과 미국법 모두에 정통하여 일본법과 미국법 사이의 충돌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주일 체코 대사시절에는 소련과 외교협상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추진하고 있었던 당시 한국의 상황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로 출발하였으나 반소, 반공의 사상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던 퍼글러는 미군정과 ‘한미법률협회’를 통해 한국에 미국법률과 자본주의 마인드를 이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이 적극적으로 일본이 남겨놓은 귀속재산을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이를 법적으로 해결하고 미군 철수 이후에도 한국의 자본주의 발달을 꾀하기 위한 작업이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홍진기 등을 통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퍼글러는 실질적인 사법결정권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1946년 3월과 1947년 7월에 미군정이 한국인들에게 행정권한을 대거 이양하였으므로 그동안 퍼글러의 역할과 작업은 부각될 수가 없었다. 예컨대, 퍼글러의 조언 속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한국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그와 접촉하고 있었던 유진오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이루어진 제정과정을 통해 나타난 한국의 제헌헌법은 놀랍게도 체코의 제헌헌법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 중심제의 성격이 혼합된 독특한 통치체제와 양원제 그리고 위헌법률 심사제도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제헌헌법과 한국에 이식된 미국법률의 실체에 대한 규명을 위해서는 퍼글러가 판결했었던 판례들에 대해 기존 영인본과 사본들 간의 대조를 통해 살펴보는 한편 퍼글러의 조수로 한국사회에 먼저 소개된 프랭켈의 저작들과 비교하고 직접적으로 비교되고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도움을 받아 추진된 체코의 독립론과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한국 독립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비교연구가 반드시 후속연구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Ⅱ. 기존 연구의 동향
1. 서구학계의 연구들
2. 체코의 연구들
3. 한국 측 연구들
Ⅲ. 퍼글러 페이퍼를 통해 본 그의 생애
1. 퍼글러의 생애
2. 그의 주요 활동과 한국관련저술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