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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물장수야학의 근대교육사에서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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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s of water-sellers in history of modern education during the period of Great Han Empire

김형목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37집 2016.12 pp.14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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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water-sellers appeared on the historical stage for a long time. Their existence as a new occupation was seriously emerged with advent of modern society. The malformed urbanization because of population growth produced a new occupation that specialized in supply of drinking water. The traditional well could not cover the fast-growing demand for drinking water. Moreover, the serious environmental pollution made the well to lose its confidence as a drinking water. The Korean Company for Waterworks was appeared in this way, which provided and managed the modern tap water. The fee of water-sellers cannot help bringing out conflict with it of water company. For water-sellers, the organization which represented their profits was a pressing question. In this time, the Organization of Night School for Laborers which was founded in march 1908 was a transitional labor organization. It was a large-scale organization with 10,000 members. The organization concentrated an effort to construct the national network organizing branches in each place. The water-sellers met the changes of the times organizing the Organization for Susang Night School as a lower branch of the Organization of Night School for Laborers. The awareness of crisis after the Russo-Japanese War was concluded in a dissemination of modern education for protection of national right. The water-sellers in Pukchong organized the Cheongwoo Scholarship Committee, and asked for Seobuk Acedemy to found the night school. Park Eun-sik founded the Night School for Water-sellers affiliated with a Hyupseong School. The newspapers and magazines supported them to press it extensively. It served as a momentum that Night School for Water-sellers gave out a light in historical stage and became a representative night school. Night School for Water-sellers caused sensation in modern education. The Labor Night School founded and managed in each place related with this situation. Night School for Korean around the Hangeul was not irrelevant to these night schools. The inspiration of national consciousness through Hangeul was a factor to inspire self-confidence of labors. It was a catalyst for changing social awareness for labors beyond a crusade against illiteracy. The movement of night school which was diffused with fervor for education after he March 1st Movement began with this historical background.

한국어

물장수는 오랜 전부터 역사적인 무대에 등장한다. 새로운 직업인으로서 존재는 근대사회 도래와 더불어 크게 부각되었다. 인구 증가에 따른 기형적인 도시화는 식수 공급을 전문적으로 하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다. 종래 우물만으로 급증하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더욱이 심각한 환경오염은 음료수로서 우물에 대한 신뢰도를 반감시켰다. 이에 근대적인 수돗물을 공급ㆍ관리하는 대한수도회사가 등장하였다. 사용료를 둘러싼 물장수와 수도회사 사이에는 갈등이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자신들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절박한 문제였다. 이러한 가운데 1908년 3월 서울에서 결성된 노동야학회(노동학회의 전신)는 ‘과도기’적인 노동단체였다. 당시 회원만 1만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조직이었다. 각지에 지부를 조직하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물장수들도 노동야학회 하부 조직으로 수상야학회를 조직하는 변화에 부응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위기의식은 국권수호를 위한 근대교육 보급으로 귀결되었다. 북청물장수들은 청우장학회를 조직하는 한편 야학 설립을 서북학회에 요청하였다. 박은식 등은 협성학교 부설로 물장수야학을 설립했다. 신문이나 잡지 등은 이러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장수야학이 역사무대에 빛을 발하는 동시에 당대를 대표하는 야학으로 발전하는 계기였다. 물장수야학은 근대교육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각지에 설립ㆍ운영된 노동야학(노동야학회)은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특히 한글을 중심으로 한 국문야학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말과 글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는 노동자 등에게 자신감을 배가시키는 요인이었다. 이는 문맹퇴치 차원을 넘어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변화시키는 기폭제였다. 3ㆍ1운동 이후 교육열 고조와 더불어 들불처럼 확산된 야학운동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노동야학회 조직과 활동
 Ⅲ. 교육열 고조와 물장수야학 운영
 Ⅳ. 물장수야학의 역사적 위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김형목 Kim, Hyung Mog.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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