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Huanghwajib(『皇華集』) is a collection of poems exchanged between the Ming envoy and Josun governor, compiled and published on the basis of special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Josun and Myung dispatched ambassadors from time to time in accordance with the diplomatic relations of investiture and tribute. Although the initial Josun-Ming relationship has been in conflict with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t has remained stable since the 15th century. However, the Ming court sent the envoys who were eunuchs from Josun. In 1450 (Sejong 32), the last year of King Sejong's reign, Ye-geum[倪謙] was municipal government. Ye-geum showed his poems to the Josun governor, and Chung Inji(鄭麟趾) and many others made poems to respond. The Yohaepyeon(『遼海 篇』) which was published after returning home, included a poem written by the Josun governor, and raised a positive perception of Josun. On the other hand, there was also a negative view of Josun, and Josun did not appreciated it. So the Josun Dynasty published the Huanghwajib. Since then, the Huanghwajib had become popular and decline according to the Josun-Ming relationship. The Huanghwajib is an important achievement that literally shows the trend of the foreign relations between Josun and Ming. The reason why the Huanghwajib was able to be published was that there were active foreign policy based on the politics of public opinion in the national management of King Sejong, the cultivation of talent through the Jiphyeonjeon(集賢 殿) and the practical literary view. In terms of diplomacy, Sejong responded promptly to changes in international affairs in East Asia, while pursuing diplomatic relations depending on the classics from the ancient to the contemporary and on discussions. As a result, King Sejong was able to obtain both the trust of his name and the will of Josun. The trust in the Josun dynasty and the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led the Ming court to dispatch scholar-bureaucrats; and the success of the scholars who established the scholarship and poetry at Jiphyeonjeon show that the Josun was civilized. Sejong's leadership and management philosophy have many implications in modern national management and foreign policy making.
한국어
『皇華集』은 조선에 온 明나라 사신과 조선의 문신이 서로 주고 받은 시문을 모 은 책으로, 朝明 두 나라의 특수한 외교 관계에 입각해 편찬․간행된 것이다. 조 선과 명은 冊封/朝貢의 외교 관계에 따라 수시로 사신을 파견하였다. 초기 조명 관계는 국제정세에 따라 갈등하기도 하였지만 15세기에 접어 들어 안정적으로 유 지되었다. 특히 世宗은 지속적인 事大 정책을 펴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정 책을 펼쳤다. 세종 통치 마지막 해인 1450년(세종 32)에 문관 출신인 倪謙이 頒登極詔使 로 와서 다수의 시문을 창작하고, 자신의 시문을 조선 관원에 보여 鄭麟趾 등이 이에 수창하였다. 예겸은 귀국하여 조선관원의 시문을 포함하여 『遼海篇』을 간행 하는데, 여기에는 조선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시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조 선 조정이 明使로부터 시문 수창집 간행 요청을 곧바로 수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화집』 간행은 정례화되었고, 이후 황화집은 조명 관계에 따라 성행하고 쇠 퇴한다. 황화집은 조명 외교 관계의 추이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물 인 것이다. 『황화집』이 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국가 경영에 공론의 정치에 입각한 적극적인 외교 정책, 集賢殿을 통한 인재 양성, 文章華國의 실용적인 문학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 면에서 세종은 事大외교를 하면서도 동아시아의 국제 정 세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되, 그 대책은 고금의 전적을 두루 살피고 토론 을 하여 합리적인 정책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세종은 명의 신뢰와 조선의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명의 조선에 대한 신뢰 및 국제 정세의 변화는 문관 출신의 명사를 파견하게 하였고, 집현전에서 학문과 詩學을 닦은 인재들이 시문수창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조선이 문명국임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 국 가 경영과 외교 정책 수립에 있어서 세종의 지도력과 경영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목차
1. 서론
2. 朝明 외교관계와 使臣 왕래
3. 세종의 對明 외교와 詞章學 흥기 정책
4. 朝明 관계 변화에 따른『皇華集』간행 추이
5. 결론
참고문헌
부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