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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양명학 연구의 새 지평에 대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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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on Yangmingxue Studies of East Asia

최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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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is written with the intention to reflect on Yangmingxue at the present time with the issue of East Asia Yangming Studies. The aim is to reflect on the new horizon of Yangming Studies in macroscopic perspective rather than detail. The summary of the discussion in this paper is as follows. First, the lecture was 'human inquiry of literacy' and Sangjak or Yangmyung was a human exploration of orality. First, Zhuzixue was human inquiry through literacy, and Xiangshanxue or Yangmingxue was 'human inquiry through orality. This point should not be overlooked. However,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people is not fundamental. That is the difference of academic tendency or characteristic. Second, the differences in East Asia's Yangming studies are rooted in geographical and historical differences in East Asia. The space called East Asia is not the same. It is rugged, not uniform. Not one but many. Each region has its own social and historical agonies. There is also a different academic consciousness. So it is natural that the twisted sight and stance created by different regions. It is an error, for example, pointing from A to B, A is not Yangmingxue, and A is wrong. Third, it is the imagination problem of Yangmingxue. Looking at East Asia as a whole, Yangmingxue can be compared to Topology. Because Yangmingxue is sharing the problem of mind. But it meets and divides around it. It is like a variety of ceramics made of mud, and various kinds of ice made by water. It is like a work that is made by variously changing rubber bands and strings. There can be no original Yangmingxue. There is only development according to each area.

한국어

이 논문은 동아시아 양명학연구의 과제를 화두로 현재 시점에서 양명학연구를 성찰해 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이다. 디테일보다도 거시적 안목에서 양명학연구의 새 지평을 성찰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논의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자학의 방향 즉 ‘언어문자의 입장=언어·문자문화(literacy)의 인간탐구’와 상 산학 혹은 양명학의 방향 <육성·소리의 입장=소리문화(orality)의 인간탐구’라는 주제에 대한 보다 세밀한 탐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점은 주자학과 육왕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자학이나 육왕학은 각기 다른 길을 걸 었던 것 같으나 결국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진정한 세계 - 동일한 지점(場) -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즉 보르헤스가 말한 “많으면서 하나인 달=우리 자신의 존재”처럼 말이다. 둘째, 동아시아의 양명학 탐구는 일단 동아시아라는 지리적, 역사적 현실이 ‘울퉁불퉁 한, 어설픈, 불편한’ 형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지역이 산출해낸 학술적 번민 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각기 다른 지리적, 역사적 형식이 만들어낸 굴곡된=뒤틀린 스탠스 혹은 시야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컨대 ‘일본 양명학은 원래의 양명학이 아니다, 왜곡된 양명학이다’ 등등의 상투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문제는 원본 양 명학을 미리 설정한 다음 여타의 전개 내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전개된 내 용(팩트) 자체를 직시하고, 그것을 그대로 명확히 기술해내는 태도이다. 평가는 그 다음 이다. 있는 것(사실)과 있어야 할 것(당위)의 간극을 인정하고 혼동하지 않는 냉정함에서 양명학은 기술되어야 한다. 셋째, 양명학 연구에 대한 상상력 부분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볼 때 양명학은 마치 ‘같은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사물들 사이에 변하지 않는 어떤 공통된 성질을 연구하는 학 문’인 ‘위상수학’(位相數學, Topology)에 비유해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양명학은 ‘심 (心)’이란 주제를 근간으로 만나고 갈라진다. 진흙과 다양한 도자기, 물과 다양한 얼음, 고 무줄-끈과 다양한 변형, 혹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나면서 다시 흩어지고, 흩어지고선 다시 만난다. 그러나 ‘같은 형태…사물들 사이에 변하지 않는 어떤 공통된 성질’을 추구하 지만 디테일에 들어서면 ‘마지막 어휘’를 거머쥐기는커녕 아찔한 떨림-실망감-황당함 같은 ‘정신적 경련’을 일으키고 만다. 하나의 ‘고무줄’이 가만히 있으면 짧지만 당기면 한 없이 늘어나듯, 양명학은 각각의 장(場)에 맞는 길이와 넓이로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본 양명학이 있을 수 없고 각각의 지역에 따른 전개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양명학 의 그 위상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각각의 자리(場)에서 특수한 바이브레이션-왜곡-재해 석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목차

한글요약문
 1. 양명학 연구의 새 지평을 기대하며 -‘상산학(象山學)’연구 상황을 실마리로
 2. 왕양명이 찾던 ‘마지막 어휘’에 대하여 -‘언어·문자’를 넘어 ‘소리’의 세계로
 3. 동아시아, 그 ‘울퉁불퉁한, 어설픈, 불편한’ 형식에대하여
 4.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최재목 Choi, Jae-Mok. 영남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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