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Since the sogeum is similar to the danggeok in design, there has sometimes been confusion as to whether they are the same instrument. They have also been confused by the interchangeable use of their names. Thus,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ir characteristics such as whether these instruments are actually the same or not, and which one are still being played. According to the old writings on the sogeum and the danggeok, many writers distinguish them by their names, but some references and books have misunderstood and regard them as the same. The sogeum has been described as having 7 holes in the 『Koryeosa』 Akji , and having 13 holes in the 『Akhakgwebeom』. Since the reign of Yeonsangun, however, no documents can be found about either instrument. The other instrument, the danggeok, has been described as having 8 holes in the 『Koryeosa』 Akji , and when in the 『Akhakgwebeom』, Since then, its design has changed with one embouchure and 6 holes According to the instrumental organization of the sogeum and danggeok, although the sogeum has been only used in the heonga orchestration of Jongmyojeryeak since the reign of Sejo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the danggeok has been employed in deungga and heonga. According to the Korean instrumental ensemble, Iseuphoe which had existed from 1932 to 1944, the danggeok was included but not the sogeum. In addition, Korean music recitals held in the National Classical Music Institute have employed the sogeum up until 1982, and have employed the danggeok since 1983. Although it has been misunderstood that the sogeum and the danggeok have been employed together through out the same period of time, according to the instrumental exhibition, the sogeum was continually on displayed, but in reality the danggeok couldn’t be found. Most of the woodwind instruments displayed in the exhibition were actually played in those days, or used as the items for the dance of the ilmu in Jeryeak. These facts result in that the sogeum has been employed in the recitals of the National Classical Music Institute, but not the danggeok. According to the instrumental instruction, performers educated for the music office of the Yi Dynasty had learned to play the danggeok but not the sogeum. After this educational system had been discontinued for ten years, the sogeum succeeded to the Training School for Korean Classical Music. Since that time, the sogeum has been taught in the school and is still played in performing groups, but from that time on, the danggeok has not been played. Considering the structure of the sogeum and the danggeok, the danggeok makes high-pitched sound because it is shorter than the sogeum. In 1956, Kim, Kisu reconstructed the sogeum with 7 holes, and named the 7th hole as both jigong and chilseonggong. These days since the 7th hole is regarded either as sogeum or as chilseonggong, the sogeum instrument can be identified by its one embouchure hole, six jigongs and one chilseonggong. Additionally, if one chilseonggong were to be added, the sogeum can be constructed with either 1 or 2 chilseonggong. To the contrary, the danggeok is constructed with one embouchure hole and six jigongs. For these reasons of design variances, this study concludes that the sogeum and the danggeok are two different instruments.
한국어
소금과 당적은 외형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간혹 명칭을 혼용해서 부르거나 동일한 악기로 보는 경우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실제로 소금과 당적이 동일한 악기인지 아니면 각기 다른 악기인지 그 특징을 고찰하 면서 지금 연주에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금과 당적에 관련된 문헌에 의하면, 명칭은 대부분 두 악기를 구분하고 있지만 일부의 경우 동일한 악기로 혼용해서 부르고 있다. 소금은 『고려사』 악지 에 7공이며, 『악학궤범』에는 13공으로 그 당시에 청공이 있었으나 연산군 이후부터는 이 악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당적은 『고려사』 악지 부터 『악학궤범』 당시에도 전체 8공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후 취구 1개와 지공 6개로 변화를 가져왔다. 소금과 당적의 악기편성에 의하면, 종묘제례악은 세조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소금이 헌가에만 쓰 이는 반면에 당적은 등가와 헌가에 모두 사용하였다. 기악 합주는 1932년 10월부터 해방 전까지 지속되었 던 이습회의 연주회에서 당적이 편성되었던 반면에 소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국립국악원의 전통 음악연주회에서 1982년까지는 소금을, 그리고 1983년부터 그 이후는 당적을 편성하였다. 소금과 당적은 모두 사용했던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데 그 당시 악기 전시회에 의하면, 소금은 항상 전람되는 반면에 당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시회에 선정한 관악기는 대부분 그 당시에 실제 연주를 하거나 제례악의 일무에서 무구로 사용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국립국악원 전통음악연주회에 편성 되었던 악기는 소금이며, 당적은 사용하지 않았다. 교육과 관련하여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 지도가 이루어졌던 악기는 당적이며, 소금은 명칭조차 보 이지 않는다. 아악의 전승교육은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이후 10년 정도 중단되었다가 국악사양성소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때부터 소금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소금은 그 이후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지도되면 서 지금까지 연주단체에서도 편성하고 있는 악기인 반면에 당적은 사용하지 않는다. 악기의 구조는 소금에 비해서 당적의 길이가 약간 짧거나 유사하지만 내경이 좁기 때문에 높은 소리가 난다. 소금은 1956년에 김기수가 복원 제작하였을 당시 지공을 7개로 개조하면서 제7공을 안쪽으로 뚫어 지공이면서 칠성공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제7공을 칠성공으로 보기 때문에 소금은 취구와 지공 6개와 칠성공 1개로 구분한다. 여기에 칠성공을 하나 더 뚫으면 2개로 보면서 1~2개의 칠성공으로 이루 어졌다고 한다. 이에 비해 당적은 취구와 지공 6개로 모두 7공이기 때문에 소금과 구별되는 서로 다른 악기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기존의 소금과 당적에 대한 견해
Ⅲ. 소금과 당적의 악기편성
Ⅳ. 소금과 당적에 대한 고찰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