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Wonju Righteous Army was the sharp decline after Min geung-ho(민긍호) death. the Since then suppression of Japan was strengthened. Suppression of Japan is as follows : First, Using a pro-Japanese group. Second, it was the indiscriminate slaughter. Third, it was the inducement of defection. Fourth, leader of the Righteous Armies is arrest. Some of Wonju Righteous Army moved to Manchuria and Maritime Province of Siberia(연해주). And began a new anti-Japanese armed struggle. Righteous Army was activities mainly the procurement of military supplies, Propaganda, the recruitment of military chest, a staff officer etc. This is to show that righteous Army had been one aspect of the anti-Japanese armed struggle. Wonju Righteous Army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Meanwhile, in Wonju it was deployed this new national movement.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국채보상운동), Night school movement(야학운동), etc Self-Strenthening Movement (자강운동) occur. Anti-Japanese movement in Wonju is on behalf of Wonju Righteous Army raised in Self-Strenthening Movement (자강운동) was deployed. The people of Wonju has been main agents of anti-Japanese movement through Wonju Righteous Army. Thus Wonju Righteous Army was the starting point of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in Wonju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한국어
원주의병은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민긍호 의병장의 사망함으로써 급속토록 쇠퇴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상렬 의병장 등이 항전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을 버티지 못하였다. 일제가 취한 원주의병 탄압방식은 첫째, 일진회 등 친일단체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둘째, 무차별 살육이었다. 셋째, 의병에 대한 귀순정책이었다. 넷째, 주요 의병장에 대한 체포였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은 효과를 거둬 원주의병은 쇠퇴하였다. 이후 원주의병에 참여한 의병들은 만주, 연해주 일대로 이동하여 새로운 항일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만주, 연해주 일대의 독립운동단체는 국내 무장세력이었던 의병들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를 원하였고, 의병들도 이에 호응하면서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의병들의 활동은 주로 보급품 확보, 선전활동, 군자금 모집, 참모 등이었다. 이를 통해 1910년대 이후 추진되는 항일무쟁투쟁의 한 축을 의병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거기에 원주의병에 참여한 인물들도 중요하게 가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원주의병이 쇠퇴한 이후 원주지역에서는 새로운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국채보상운동으로 시작된 자강운동이 야학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원주지역의 항일운동이 원주의병 이후 자강운동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원주지역은 개항 이후 농민항쟁 등을 통해 민들이 저항주체로 성장하였으며, 원주의병을 거치면서 적극적인 항일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따라서 의병운동 뿐만 아니라 국채보상운동, 야학운동 등 자강운동을 통한 국권회복운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항일운동의 주체의식은 일제강점기 3⋅1운동 등 민족해방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즉 일제강점기 원주지역에서 전개된 민족해방운동의 출발은 원주의병을 거치면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목차
Ⅱ. 원주의병의 쇠퇴와 일본군의 탄압강화
Ⅲ. 만주항일무장투쟁과 국내민족운동의 전개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