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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 제1차 교육과정기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

제1차 교육과정의 국사 교과서 서술체제와 내용 분석

원문정보

The Analysis of Systems and Contents of Korean History Textbooks of the First Curriculum

성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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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extbooks are said to be books which are the basis of teaching-learning and edited to fit for a class. Textbooks, especially history textbooks, reflect the historical perspective of the time when they are written. The first curriculum was made wh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established after its Liberation. The period of the first curriculum extended from Ordinance No. 35 of the Ministry of Education(April 20, 1954), Ordinance on Curriculum Time Allocation, to Ordinance No. 120 of the Ministry of Education(February 15, 1963). Textbooks in those times have improved a lot since the US military government, and especially history textbooks needed to overcome a colonial view of history. The number of 10 history textbooks for middle school and 4 history textbooks for highschool which got official approval in 1956 had increased since then. But, most of the author of middle school textbooks specialized in history in Waseda University and Tokyo Universit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y had limits in getting out of a colonial view of history because they were educated under it. History textbooks in those days were written based on guidelines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the premodern history made up about 80% of their contents. Although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and an independence movement had to be emphasized, they were little written in the history text and students could not learn the independent historical view in the class. Description of historical eve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hich were the basis of identity and heteronomy, inherited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The writers recognized Dangun just as a myth, not a historical fact. They described with detail Han’s rule of Gojoseon, which Japanese historians emphasized greatly. This implied that our history had developed through outside influences. They simply wrote Silla-Dang War, and described Movement of Transferring the Capital by Myocheong and Donghak-Peasant Revolution as a rebellion. In addition, they underestimated Jangbogo’s Marine Activity and King Gongmin’s reforms as a failure because of individual inability. Bungdang politics, another colonial view of history, were depicted in a very negative way.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the largest independence movement, were explained roughly. This poor contents of history textbooks were published without overcoming colonial views of history. There were several reasons for the limits of contents of Korean history textbooks of the first curriculum. First of all, the Ministry of Education didn’t present the criterions for editing a history textbook. Writers of textbooks also didn’t try to overcome their colonial view of history as well. In addition, the national view point of history couldn’t establish its stand in the aftermath of ideological conflicts in Korean Civil War. Then, there were little research in the historical world. Lastly, the aftermath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han continuous influences on the Korean society. Although the publication of Korean history textbooks of the first curriculum was a touchstone of subsequent publication of history textbooks, it couldn’t be a model for history textbooks because they were written by the historians who learned a colonial view of history, not an independent view of history.

한국어

교과서는 수업을 위해 적합하도록 편집된 도서로 교수 학습의 기본이 되는 교재이다. 교과서는 그 시대의 역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국사 교과서는 더욱 그러하다. 해방 이후 미 군정기를 벗어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하면서 독립국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교육이 제1차 교육과정기이다. 제1차 교육과정은 1954년 4월 20일 문교부령 제35호로 제정, 공포된 ‘교육과정 시간 배당 기준령’ 이후, 1963년 2월 15일 문교부령 제120호로 개정된 ‘교육과정령’이 공포되기까지의 교육과정을 말한다. 이 시기의 교과서는 해방 이후 미 군정기에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조잡한 교과서를 벗어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한 결과물이기도 하였다. 특히 국사 교과서는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1956년 검인정을 통과한 중학교 10종과 고등학교 4종의 교과서는 이후 확대하였다. 중등학교 교과서의 저자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과 일본의 와세다대학, 동경제국대학 등에서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에 의해 저술되었다. 이들은 일제 식민사관으로 교육받아 이를 벗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제1차 교육과정기의 국사 교과서는 문교부의 지도목표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는데 전근대사가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였다. 식민지를 벗어나 자주적 독립국가의 건설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배 청산과 독립운동에 대한 강조가 주요한 의제였음에도 이에 대한 내용이 국사 교과서에 거의 서술되지 않아 학생들은 역사 수업을 통해 자주적 역사관을 배울 수 없었다. 이러한 측면은 교과서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제 식민사학의 주요 이론인 정체성과 타율성의 근거가 되었던 주요 사건에 대한 서술 내용은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크게 벗아나지 못했다. 단군에 관하서는 설화로 서술하여 우리 역사의 출발에 대한 자주적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타율성과 관련해 일제가 많이 강조하던 한 군현의 지배는 상세히 서술되어 우리 역사가 외래의 충격에 의해 발전했음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의 자주적 활동을 보여주는 나당전쟁은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동학농민운동은 반란으로 기술되었다. 또한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공민왕의 개혁은 개인 역량의 부족으로 실패하였다고 그 의미를 축소하였다. 식민사관의 또 다른 이론인 당파성을 강조하던 붕당정치는 긍정적인 측면의 내용보다 부정적 측면이 강조되어 서술되었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은 분량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이처럼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해방 이후 한국사의 과제를 실현하지 못한 채 간행되었다. 이러한 제1차 교육과정기 국사 교과서의 한계는 몇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교과서 간행을 주도하던 문교부가 교과서 편찬의 기준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둘째, 교과서를 저술한 학자들이 식민사관을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셋째, 6⋅25전쟁의 여파로 이념 대결이 강화되어 민족사학의 정립이 도외시되었기 때문이었다. 넷째,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미흡하였다. 다섯째, 미군정기의 여파가 작용하고 있었다. 제1차 교육과정기 국사 교과서는 이후 교과서 간행의 시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는 여전히 식민사관의 수혜 속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던 학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주체적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후 국사 교과서 서술의 모범이 되지 못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제1차 교육과정 중등학교 국사 교과서 서술 체제
 Ⅲ. 제1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내용 분석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저자정보

  • 성강현 Sung, Kang-Hyeon. 동의대학교 겸임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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