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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기독교 종파의 형성과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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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se and Development of Protestant Sects in Korea during the Colonial Period

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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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explores the rise and development of protestant sects in Korea during the colonial period, focusing on three kinds of movement. The first group was Joseon Kidok Kyohui(Korea Christian Church) founded by Kim Jang-Ho in 1918 in Hwanghae Province. This sect criticized the theological conservatism of established church in the perspective of liberal theology. Especially Kim revealed the problem and danger of biblical literalism, stressing the necessity of biblical criticism for making sane Korean church. The second group consisted of sects based on mysticism, which put a stress on religious experience. Those mystic sects influenced by shamanism became a threat to the established church, since mysticism tend to relativize the dogma. The third group was known for no-church movement. This group by influenced by Japanese no-church movement criticized the rigidity of established church, arguing that true christianity need not any formalistic elements, such as creed, worship, chapel, clergy, baptism, eucharist, etc. No-church group put emphasis on Bible study. But, Choei Taeyong, a member of no-church group, made a church called Bokeum Kyouhoei(Gospel Church), arguing the necessity of church in Korea. The commonality of three groups was anti-missionary movement. They challenged the missionary hegemony in theology and decision-making of Korean church. In conclusion, those sects played the role of reforming Korean protestant church, revealing some problems of established church.

한국어

이 논문은 한국 기독교계 신종교 연구의 일환으로 일제하 기독교 종 파에 주목하였다. 일제하 주류교회는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신학적 으로는 보수 근본주의, 신앙적으로는 형식주의, 조직의 측면에서는 교 회주의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주류교회에 대해 세 유형의 종파가 등 장하여 도전하였다. 보수 근본주의 신학에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김장호의 조선기독교회 였다. 김장호는 근대 성서비평학을 수용하여 축자영감설에 기초한 문 자주의적 성서해석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당시 보수 근본주의 신학에 경도되어 있던 기성교회는 성서비평학을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는 위험 한 학문으로 규정하고 배척하였다. 김장호의 신학적 합리주의는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와 같은 진보적인 진영에서는 수용되었으나 한 국 개신교 보수진영에서는 아직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김장호와 기독교조선교회의 신학적 ‘선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기성교회 신앙의 경직화와 형식화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것은 1920-30년대 신비주의 계열의 ‘신령파’이다. 이 흐름은 평안도를 중심 으로 한 ‘새주파’와 함경도를 중심으로 한 ‘원산파’로 대표된다. 이러한 종파들의 신앙은 샤머니즘적 종교체험이 기독교 언어를 통해 번역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용도와 관련된 원산파의 경우에는 ‘예수교회’로 수렴되면서 입신을 강조하는 노선과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이지만, ‘성주 교회’로 귀결된 새주파의 신앙은 이러한 흐름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교회가 교회주의에 포획되어 있을 때 이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 이 무교회주의이다. 무교회주의는 교직제도, 세례, 성만찬, 교회건물 등은 형식적 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성서공부를 통해서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찾으려고 하였다. 물론 이들은 제도교회의 문자 주의적 성서해석이 아니라 근대 성서비평학을 적극 수용하여 문자의 배후에 있는 영적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최태용의 경우 복음교회 를 세우면서 무교회주의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추구했던 기본 정신은 무교회주의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우치무라 간조, 김교 신, 그리고 최태용은 개신교의 종교개혁 정신을 철저히 하고자 한 인 물들로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은 ‘만인사제설’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성직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며, 교회도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 로 나누고 있기 때문에 지상에 존재하는 제도교회는 절대적 권위를 지 닐 수 없다. 김교신의 무교회와 최태용의 복음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 이 제도교회에 의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종교권력화되고 있다고 보면서 제2의 종교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차

한글요약
 1. 들어가며
 2. 개신교의 제도화와 반선교사 운동
 3. 기독교 종파의 출현과 유형
  1) 조선기독교회
  2) 예수교회와 성주교회
  3) 무교회운동과 복음교회
 4. 나가며
 Abstract
 참고문헌

저자정보

  • 이진구 Lee Jin Gu. 서울대학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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