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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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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Gyeongbuk Province

신영우

동학학회 동학학보 제12호 2006.12 pp.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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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development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differs in each province. In Gyeongbuk province, the Donghak Peasant Army operated in accordance with the order of the Donghak. Hence the army submitted to local authorities and militia activity was restrained. However, when invaded by Japanese military, they were first to arm against Japanese and tried to drive them out. The armories and supply depots of Japanese army in Gyeongbuk province were targeted. And this campaign of securing munitions and supplies brought a backlash from the aristocracy, ``Yangban``, and wealthy landlords, ``Jiju``. Consequently the Donghak Peasant Army fought the Home Guard sent by the aristocracy and wealthy landlords and later the Japanese army. As a result the peasant army was defeate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Gyeongbuk province highlighted several facts. First, the Donghak had strong influence over the peasant instead of Confucianism. Second, as for ``Yaecheon`` and ``SangJu``, the power of petty officials (``Hyangni``) who are in charge of practical affairs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has grown significantly. Third, the revolution also manifested clear division among Korean societies even prior to the imminent war against Japanese. While they wanted to combine forces against Japanese army, as the peasants pursed old personal grudges against the aristocracy and wealthy landlords the peasant army lost the opportunity to join the forces. Furthermore the aristocracy in Gyeongbuk province who are socio-economically in opposition to the peasant slaughtered the peasant army in collusion with Japanese even as the Japanese army in ``Gyeongbokgung`` palace took the King as a hostage.

한국어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경상도 북부지역의 전개과정을 전라도와 비교하면 시기에 따라 다른 형태가 뚜렷이 드러난다. 전라도에서는 동학 교단과 일정한 거리를 둔 남접의 지도자들이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독자 세력을 확보하였다. 경상도 북부지역의 동학조직은 동학 교단의 지침 아래 활동하였다. 하지만 6월 말 이후 경상도 북부지역의 동학 조직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앞서서 무장활동을 서둘렀고, 8월에 들어오면 무장봉기에 나서고 있었다. 이 지역의 동학 조직이 무장봉기를 일찍 준비하게 된 까닭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다. 청과의 전쟁을 위해 육군 대부대를 도보로 북상시킨 일본군은 경상도 요지에 병참부를 설치했는데 이 병참부가 공세의 대상이 되었다. 경상도 북부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이 2차봉기를 전후해서 무장활동을 격화시킨 군현은 예천·경·상주·선산·김산·안의·거창·의흥·성주 등지였다. 모두 일본군 병참부가 가까이 있던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에서 활동한 조직은 관동포(예천·문경 일대), 충경포(상주·선산·김산 일대), 상공포(상주·예천 일대), 선산포(선산·김산 일대), 영동포(김산·개령 일대)의 5개 대접주 조직이었다. 경상도 북부의 각 군현에서 1894년에 동학 조직이 활동하는 모습은 시기에 따라 확연히 구분이 된다. 편의에 따라 4시기로 나누면, 제1기는 3월에서 7월 초까지 동학 조직이 표면에 드러나서 활동을 펼치던 시기이다. 제2기는 7월 초에서 8월 하순까지 일본군과 대적하기 위해 무장을 강화하던 시기이다. 제3기는 8월 하순에서 9월 하순까지 무장봉기와 기포령에 의해 읍내 점거를 시도했던 시기이다. 제4기는 9월 말 이후 일본군·관군·민보군에 의해 동학농민군이 진압, 추적을 받던 시기이다. 일본군과 충돌한 것도 경상도 북부지역이 가장 먼저였다. 예천의 동학 조직이 산양에서 집결하여 일본군 병참부 공격을 준비하자 태봉병참부의 일본군 다께우찌 대위가 병정 2명과 함께 정탐하러 왔다가 발각되어 피살당하였다. 청과 전쟁을 위해 수많은 일본군이 북상하는 것을 보게 된 이 지역의 동학교도들이 무장 활동을 시작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가장 먼저 예천의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9월 18일 동학 교주 최시형의 기포령은 경상도 북부지역의 동학 농민군이 일제 봉기하는 신호였다. 9월 22일 상주·선산 등 대읍이 동학농민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관아의 무기는 모두 탈취되었다. 관아 건물은 동학농민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그러나 경상도 북부지역의 동학농민군은 민보군과 일본군의 반격을 받아 급속히 위축 되었다.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격화된 지역을 순회하는 남영병에 맞서서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제4기는 9월 하순 상주와 선산 같은 주요 군현에서 물러난 동학 농민군이 외촌에 흩어져 있다가 민보군과 관아의 추적을 받아 체포 되거나 영동과 황간에 집결한 북접농민군 대군에 합류하여 공주 우금치 전투에 참여한 시기이다. 체포를 모면한 동학농민군 가담자들은 산골 깊숙한 지역으로 피신하거나 충청도 등 외지로 피난하여 숨어 있었다. 군현에 따라 동학에 입도했거나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한 사람들에게 호된 보복을 하기도 하였다. 경상도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여러 문제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첫째 영남 북서부에서도 사교로 탄압받았던 동학이 유교를 대신해서 세력을 확산해간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아직 양반 가문의 향촌사회 지배력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었지만, 향리들의 힘이 관아의 실무를 장악한 것을 배경으로 점차 양반층을 압도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던 사실이다. 셋째는 일본과의 전쟁을 앞두고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을 해치는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동학농민군과 양반층 또는 민보군은 서로 합세할 여건을 갖지 못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양반층에게 합세를 요구하면서 부농과 지주에게 과거의 원한을 보복함으로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이 지역의 양반층은 국왕이 경복궁 안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인신이 장악된 상태에서 동학농민군과 적대하고 일본군을 끌어 들여서 동학농민군을 학살하였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뒤에는 예천과 김산의 민보군과 양반들이 의병을 결성해서 활동하지만 경군과 남영병과 제대로 전투조차 벌이지 못하고 패산하였다. 1894년에 힘을 합하지 못했던 동학농민군과 반일 양반세력은 결국 일본군과 친일 관료들이 장악한 관군에 의해 각각 격파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내부 갈등에서 발판을 마련하여 조선 국가와의 전면 전쟁이 없이 침략을 감행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경상도 북부지역의 동학농민군 조직 확대
 3. 경상도 북부 각 군현의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
  1) 대구
  2) 예천
  3) 안동
  4) 상주
  5) 김산
  6) 성주
 4. 경상도 북부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의의
 5. 맺는 말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신영우 Shin, Young-ou. 충북대학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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